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세계화 시대가 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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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들어 세계 시장이 열리면서 우리 경제에도 변화가 생겼어요. 한국 정부는 세계화에 발맞추어 나갈 것을 이야기하며 경제 개발 협력 기구(OECD)에 29번째로 가입하였어요. 그러면서 상품과 자본을 개방하는 경제 정책이 추진되기도 했어요.
그러던 중 한국 경제에 위기가 닥쳤어요.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국가들이 금융위기를 맞게 되었어요. 국가에서 가지고 있는 달러가 바닥나면서 외환위기를 맞게 된 거지요. 달러가 부족해 외국에서 원료나 제품을 사 올 수 없고, 빚도 갚을 수 없었어요.
대기업들이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벌여 과잉 투자를 해 빚이 늘고, 정부에서는 이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거에요. 기업들은 파산을 하거나 부도가 났고,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들도 생겨나기 시작했지요. 외국에 진 빚을 갚으라는 독촉도 있었어요. 결국 정부는 1997년 12월 국제 통화 기금(IMF)으로부터 돈을 빌려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했어요.
국제 통화 기금에서 돈을 빌리기 위해 서명하는 모습
국사편찬위원회
국제 통화 기금(IMF)의 관리를 받게 되면서 기업을 합치기도 하고, 부실한 은행이나 기업을 정리하기도 했어요. 심지어 기업의 상황에 따라 노동자들을 그만두게 할 수도 있게 했지요.
문어발 경영
국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맸어요. 집에 있는 금붙이를 모아 나랏 빚을 갚는 데 보탰어요.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쫓겨나 일자리를 잃기도 했지요. 정부와 기업, 그리고 국민의 피땀 흘린 노력으로 다행히 짧은 기간 안에 외환위기를 이겨냈지만 우리 사회는 둘로 나뉘었어요. 부자는 더 잘살게 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살기 어려워졌지요. 무엇보다 기업이 노동자들을 마음대로 그만두게 할 수 있게 되면서 그들은 언제 직장을 잃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했지요.
한편 미국 등 선진국들이 우리나라에서 자유롭게 투자하고 물건도 팔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어요.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 물건에 대한 세금을 매기는 것과 같은 보호 장벽을 없애고 무역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든 거지요. 미국, 칠레 등과 자유무역 협정(FTA)이 맺어지고 외국의 값싼 농산물들이 물밀듯 들어왔어요. 우리 농민들은 세계 여러 나라와의 경쟁 속에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