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 밖에 왕위에 오른 효종, 북벌을 준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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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5년 소현 세자는 8년의 볼모 생활을 접고 먼저 조선으로 돌아오게 되지요. 청이 명을 정복하고 중국을 통일하자 더 이상 조선의 세자를 붙잡아 둘 필요가 없었어요.
하지만 소현세자는 그리운 고국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조선은 아직도 청에 당한 치욕에 복수하고 명과의 의리를 지켜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데 세자가 원수 같은 청과 친하게 지냈을 뿐만 아니라 낯설고 이상한 서양 문물에 관심이 많았던 것이에요. 아버지 인조나 그를 따르는 신하들은 소현세자를 못마땅하게 여겼어요.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소현세자는 갑자기 죽었고, 뒤를 이어 봉림대군이 세자가 되었어요. 조선의 일반적인 예법에 따르면 세자가 죽으면 세자의 맏아들이 왕위를 계승하지요. 하지만 인조는 소현세자의 동생인 봉림대군을 세자로 삼아서 왕위를 잇게 하였어요. 이 사람이 바로 효종 임금이에요.
효종은 즉위 후 바로 청에 복수하는 것을 최고의 과제로 삼았어요. 북쪽의 청을 정벌하자고 해서 이를 ‘북벌’이라 하죠.
효종은 그와 뜻을 같이 할 신하들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청과 친하게 지내자고 주장하는 신하들을 내쫓고, 청에 반대하는 신하들을 등용하였지요.
북벌을 준비하는 효종
효종은 북벌을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시켜 나갔어요. 무엇보다 허약해진 군사력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하였죠. 변경의 허물어진 성들을 고쳐 나갔고, 무기들도 새로 수리하거나 만들었어요. 군대의 규모를 늘렸고, 군사 훈련에도 힘썼지요.
효종이 북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주목할 것은 조총부대를 만들었다는 점이에요. 조총은 임진왜란 때 그 위력이 입증된 무기죠. 효종은 북벌을 위해 우수한 신무기가 필요하다 생각했고 이에 조총이 적합한 무기라 판단했지요.
때마침 『하멜표류기』를 써서 유명해진 네덜란드 사람 하멜 일행이 제주도에 표류해 있었어요. 그리고 이미 조선인으로 살고 있는 벨테브레(조선 이름 박연)라고 하는 서양인이 있었어요.
효종은 이들에게 더욱 정교한 서양식 조총과 대포를 만들도록 하는가 하면, 무기 사용법도 가르치고 군사 훈련도 맡게 하였어요. 이들 덕에 효종은 군대를 강하게 키울 수 있었고, 우수한 조총군을 양성할 수 있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