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관군, 되살아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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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 지원군이 조선에 도착하면서 임진왜란은 조선과 일본 두 나라의 싸움을 넘어 동아시아 국제전쟁으로 확대되었어요. 조선의 관군과 명군은 힘을 합쳐 평양성을 되찾았어요. 또 김시민이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 권율이 행주산성에서 일본군에 맞서 승리를 거두었어요.
행주대첩
평양성을 빼앗긴 일본군은 한성으로 후퇴했어요. 명의 군대는 한성에 있는 일본군을 다시 치려고 했으나, 길목에 숨어있던 일본군에게 크게 패했어요. 이후 명나라의 군대는 전쟁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지요. 한편, 한성에 모인 일본군도 많은 군대를 잃어 전쟁을 계속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명과 일본군은 전쟁을 그만두기 위해 협상을 벌이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두 나라의 협상은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지요. 일본이 조선의 왕자를 인질로 보내고, 조선 8도 중 4개 도를 내놓으라는 등 무리한 요구를 했기 때문이에요.
협상이 실패로 끝난 후 일본은 1597년(선조 30) 조선을 다시 침략했어요. 이 사건을 정유재란이라고 불러요. 정유재란 때 일본은 임진왜란 때처럼 북쪽으로 진격하지는 못했어요. 조선이 군사 조직을 정비하고 대비했기 때문이지요. 일본군은 충청도에서 조선 관군과 전투를 벌인 후 남쪽 해안가로 물러났어요. 그리고 그곳에 왜성을 쌓고 전쟁을 이어나갔어요.
그 무렵에는 더 많은 명 군사들이 곧바로 조선에 들어왔어요. 조선 관군은 명 군대와 함께 일본군을 남해안 지역까지 서서히 밀어붙였고 울산 왜성을 비롯한 곳곳에서 공격을 이어나갔어요. 하지만 일본군은 끝까지 버텼어요.
그런데 1598년(선조 31)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어요. 전쟁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었다는 거였어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남은 부하들은 전쟁을 계속할 생각이 없어 군대 철수를 명했어요. 철수 명령을 받은 일본군은 하나둘씩 자기 나라로 돌아갔어요. 조선 수군은 철수하는 일본군에 끝까지 맞서 싸웠어요. 바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이었지요.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노량해전에서 전투를 벌이다가 일본군이 쏜 총탄에 맞아 전사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