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백제와 대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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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의 원한을 갚고 백제의 영광을 되살리고자 후백제를 세운 견훤과 고구려의 후손임을 강조하며 고려를 세운 왕건은 충청도와 전라도, 그리고 경상도의 여러 지역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어요. 견훤이 노골적으로 신라에 적개심을 드러내고 대야성을 비롯해 신라의 여러 성을 공격한 반면, 왕건은 직접 신라를 공격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신라는 신라 하급 장교 출신의 견훤을 역적으로 생각했고, 지방 호족 출신 왕건에게 호의를 보였지요. 신라는 은근히 고려에 의지하고 있었던 것이에요.
신라가 고려의 편에 서서 움직이자 견훤은 고려와 신라 사이를 끊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신라를 공격하였어요(927년). 경애왕은 고려에 구원군을 요청했지만, 고려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후백제군은 서라벌로 쳐 들어가 포석정에서 경애왕을 생포하였어요. 견훤은 자신을 따르지 않던 경애왕과 많은 왕족들을 죽이고 왕궁을 약탈하였지요.
포석정과 경애왕
경주를 점령한지 얼마 되지 않아 고려군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견훤은 신라에 허수아비 왕(경순왕)을 세우고 군대를 돌렸어요. 경주에서 빠져나오던 후백제군과 신라를 돕기 위해 오던 고려군은 대구 공산(팔공산)에서 마주쳤고, 큰 전투가 벌어졌어요.
공산 전투 초반에는 고려군이 승리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나 후백제군에게 고려군은 완전히 포위되어 전멸당할 위기에 처했어요. 이때 왕건이 가장 아끼던 부하 장수 신숭겸이 나서 말하였어요.
“제가 대왕과 외모가 비슷하오니 대왕의 옷을 입고 싸우는 동안 이곳을 벗어나십시오!”
공산전투
왕건은 달리 방법이 없었어요. 신숭겸이 죽을 것을 뻔히 알았지만 어쩔 수 없이 눈물을 흘리며 허락하고 말았죠.
신숭겸은 왕건의 옷과 갑옷을 입고 군사들과 함께 후백제군의 진영으로 달려가 용감하게 싸웠어요. 이 틈을 타서 왕건은 병사 옷으로 변장하여 포위를 뚫고 간신히 탈출하였어요. 신숭겸과 여러 병사들은 후백제군의 화살을 맞고 끝내 전사하였지요.
견훤의 후백제군은 승리의 기세를 몰아 신라 대목군(현 칠곡군)을 약탈하였고, 논과 밭에 쌓인 곡식들을 모조리 불살라 버렸어요. 공산 전투 이후 고려군이 전투를 피할 정도로 견훤의 후백제는 한동안 후삼국 중 가장 강력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