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앞선 여성으로 자리한 신사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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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은 그림 활동 같은 예술 분야만 아니라 남편과 자식들에게도 정성을 다했어요. 신사임당은 율곡 이이를 비롯해서 일곱 명의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언제 어디서나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도록 격려했어요. 무엇보다 본인 스스로가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는 일을 꾸준히 하면서 자식들에게도 모범을 보였어요. 몸소 행한 가르침 덕분에 신사임당의 뜻에 맞게 자식들 모두 훌륭하게 성장하였어요.
“저도 어머니처럼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그래, 붓을 들고 네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림을 그려 보거라.”
신사임당의 첫째 딸 매창은 어머니를 보면서 자신의 꿈을 키웠어요. 신사임당 역시 부모님이 그러하였듯 남녀 차별 없이 자식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게 하였어요. 이에 신사임당의 자녀들은 저마다 소질을 키우며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었어요. 이 중에서 특히, 셋째 아들 율곡 이이는 조선을 대표하는 학자로 성장했어요.
오늘날 우리들에게 신사임당은 현명한 어머니이자 어진 아내를 나타내는 ‘현모양처’의 상징처럼 되었어요. 전세계에서도 사실 어머니와 아들이 동시에 화폐에 주인공이 된 경우는 찾기 힘들어요. 이 정도로 신사임당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고 있어요.
이이와 오죽헌이 그려진 오천원권
우리는 흔히 ‘현모양처’하면 현명한 어머니에 착한 아내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신사임당이 살아 온 삶을 보면 그저 자식과 남편만을 위하는 것이 현모양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건네주는 자주적인 여성으로 살았기 때문이에요.
작고 하찮은 풀과 벌레들에도 애정을 갖고 예술 활동을 펼쳤던 신사임당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