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한산도에서 일본군을 크게 물리치다

컨텐츠 정보

본문

조선 수군의 승리 중 가장 큰 전투는 한산도 앞바다에서 일어났어요. 일본 수군은 해전에서의 계속된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병력의 수를 늘렸고, 함선 70여 척을 견내량에 정박케 하였어요. 견내량은 통영과 거제도 사이의 좁고 긴 수로로 폭이 넓은 곳도 600m를 넘지 않았어요. 게다가 암초가 많아 판옥선이 움직이면서 전투를 벌이기에는 알맞지 않았지요.


이순신은 먼저 판옥선 5~6척을 견내량으로 보냈어요. 일본 수군을 넓은 한산도 앞바다로 끌어내기 위한 미끼였어요. 일본군은 조총을 쏘며 판옥선을 공격하였어요. 조선 수군은 패한 척을 하며 일본 수군을 한산도 앞바다로 조끔씩 유인해 나갔어요.


넓은 바다로 나온 일본 수군은 50여 척의 조선 수군 본진을 보고 함정에 빠졌음을 알아챘어요. 일본군이 당황해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조선 수군은 판옥선을 빠르게 돌려 학익진을 폈어요. 순식간에 일본 수군의 배들을 포위한 거지요. 그리고 총통을 동시에 쏘아댔어요. 거북선은 일본 수군의 배들 사이를 돌진하여 진영을 흩뜨려 놓았고요.



4c0ab2095b22a8b9744cabf724df5dd4_1746352358_1073.JPG
한산도 대첩과 학익진




일본군 함선은 판옥선보다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어요. 그래서 판옥선에 배를 붙이고 올라타 공격을 하는 방법을 사용하고자 했어요. 그러나 먼 거리에서 쏘아대는 조선군의 총통에 판옥선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일본군 함선은 하나둘 파괴되어 침몰되었어요. 급기야 목숨을 건진 몇몇 일본군은 배를 버리고 육지로 달아나 버렸지요.


한산도 앞바다는 부셔진 일본 수군의 배 파편들과 시체들로 가득 찼어요. 일본 수군은 59척의 배를 잃었으나, 조선 수군은 판옥선과 거북선을 한 척도 잃지 않은 대승이었어요.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한산도 앞바다에서 일본 수군을 크게 무찔러 승리하였다고 하여 이를 ‘한산도 대첩’이라고 불러요(1592년).

한산도 대첩 이후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순신은 한산도에서 조선 수군 전체를 지휘하였어요. 한산도에서 패배한 일본 수군은 바다에서의 전투를 포기하였어요. 결국 남해를 돌아 서해로 나아가 일본 육군과 합류하려던 계획도 물거품이 되었지요. 평양성까지 점령했던 일본군도 바다로의 보급이 끊겨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어요. 한산도 대첩으로 조선을 차지하고 명으로 가려던 일본의 계획이 실패하게 된 것이지요.


강한 일본군에 맞서 이순신은 철저한 준비와 전략으로 해전에서 연전연승했어요. 한산도에서 크게 승리한 이순신은 또 어떤 전투를 치뤘을까요?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4 / 1 페이지
RSS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