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을 사액 서원이 되도록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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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 임금은 뛰어난 유학자인 이황에게 서울에 와서 관직을 맡으라고 했어요. 결국 이황은 관직 생활을 다시 이어나갔지요. 그는 명종 임금에게 서울보다 지방에서 일하기를 청하였어요. 이황은 1548년에 충청도 단양 군수가 되었다가 넷째 형 이해가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하자 경상도 풍기 군수로 옮겨갔어요. 그는 지방 관리로서 백성을 잘 다스렸지요. 마을 백성들은 이황이 훌륭하다고 칭송했어요.


한편 풍기 지역에는 조선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이 있었어요. 서원은 뛰어난 유학자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지방 양반을 교육하는 공간이었어요. 풍기 군수 이황은 경상도를 다스리는 경상도 관찰사에게 서원에 내걸 현판과 사람들을 가르칠 유학 서적을 내려주도록 요청했어요. 그래서 경상도 관찰사는 중앙 정부에 보고했고, 명종 임금은 직접 쓴 ‘소수서원’이라는 현판, 연구와 교육에 쓰일 각종 서적과 서원의 경제에 보탬이 될 토지까지 내려줬어요.


이처럼 임금이 서원 이름을 지어서 현판과 서적 등을 보내주는 것을 ‘사액’이라고 해요. 서원이 사액을 받게 되면 대단한 영광이었지요. 사액 서원에는 많은 선비가 모였고, 그 지역의 유학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이처럼 백운동 서원이 소수 서원이라는 사액 서원이 된 후 전국 각지에서는 수많은 서원이 세워졌어요. 사액 서원도 점차 늘게 되었지요. 그리고 각지의 서원에서 공부한 선비들이 과거 시험에 합격하여 중앙 정계로 진출하면서 큰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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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서원

유네스코와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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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서원 현판

소수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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