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덕

제주도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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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덕이 제주도에서 큰 상인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던 1795년 엄청난 태풍이 제주도를 휩쓸고 지나갔어요. 태풍 때문에 제주도에서는 집들이 무너지고, 농부들이 열심히 가꾼 곡식들은 다 쓰러졌어요. 결국 마을 곳곳에서 먹을 것이 없어 많은 사람들이 굶주렸어요.

정조 임금은 제주도 사람들을 도우라고 명을 내렸어요. 그런데 하필이면 이때 태풍이 불어 닥쳐 임금이 보낸 곡식 2만 섬을 실은 배들이 부서져 그만 그 많은 곡식들은 제주도에 제대로 도착하지 못했어요. 이로 인해 제주도 사람들은 큰 어려움에 처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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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에게 곡식을 나워주는 김만덕




“여태까지 그렇게 고생해서 모은 전 재산을 이렇게 내어 놓으면 어떻게 합니까?”


“아닐세. 재산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짜 필요할 때는 아낌없이 써야 하는 법이네.”


“제대로 된 옷도 없고, 늘 소박한 음식만 드셨는데.. 전 재산을 내어 놓다니요?”

“어쩌면 이런 날을 위해 내가 그리 열심히 살았는지도 모르겠네.”


김만덕은 허허 웃으며 자신의 전 재산을 어려움에 빠진 제주도 사람들을 위해 내놓으며 굶주리는 사람들을 도왔어요. 많은 사람들이 김만덕의 은혜를 칭송했어요.


“우리를 살려준 김만덕의 은혜를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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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를 만나는 김만덕




임금인 정조는 이 소식을 듣고 분부했어요.


“만덕에게 소원을 묻고 그것을 들어 주거라.”


이를 전해들은 김만덕은 이야기했어요.

“서울에 가서 임금이 계신 곳을 바라보고, 금강산에 가서 말로만 듣던 일만 이천 봉을 구경할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습니다.”


당시 조선 사회에서는 제주도의 여인이 바다를 건너는 것을 금지했어요. 하지만 정조는 특별히 김만덕을 내의원 의녀로 삼아서 궁궐에 올 수 있도록 했어요.


“고개를 들라. 과인은 그대에게 큰 상을 내리고 싶다. 어찌 그 많은 재산을 다 나눠줄 수 있었는가?”


“소인은 그저 사람으로서 할 도리를 했을 따름입니다.”


“허허, 그 마음 또한 기특하도다.”


정조는 김만덕에게 소원이라고 했던 금강산을 둘러볼 수 있게 해주었어요. 덕분에 김만덕은 아름다운 금강산에 직접 다녀올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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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을 여행하는 김만덕




이후 수많은 관리와 선비들은 서울에 온 김만덕을 직접 만나보고 싶어 했어요. 당시 영의정 채제공과 정약용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김만덕을 만나고 그 기록을 남겼어요.


사람들은 김만덕의 큰 인품에 감탄하며 시를 짓고 그녀를 칭찬했어요. 이런 내용은 채제공이 김만덕을 만나 그녀의 이야기를 기록한 『만덕전』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어요.

이후 김만덕은 제주도에서 열심히 살아가다가 73세에 세상을 떠났어요. 김만덕은 금강산 여행을 떠올리면서 행복하게 눈을 감았다고 해요.


김만덕이 숨을 거둔 이후 제주도로 온 추사 김정희는 ‘은혜로운 빛이 여러 세대로 이어진다’는 글을 쓰며 김만덕을 기렸어요. 지금도 제주도에서는 ‘만덕상’을 만들어 해마다 김만덕처럼 아름답게 산 사람들에게 상을 주고 있어요. 김만덕이 펼친 나눔을 통해 진정한 부자는 어떤 사람인지 함께 생각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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