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사제의 길로 들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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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6년 6월 어느 날 경기도 용인의 어느 산골 마을에 푸른 눈의 한 외국인이 나타났어요. 피에르 모방이라는 프랑스 신부였어요. 이곳은 천주교 박해를 피해 들어온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었어요.
모방은 이 마을에서 미사(천주교 의식)를 드리고,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어요. 그가 세례를 준 사람 중에는 세례명이 김 안드레아라는 소년도 있었어요. 그 소년이 바로 김대건이에요.
김대건은 1821년 충청남도 당진 솔뫼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를 따라 이 마을로 이사해 살고 있었지요. 모방은 그런 김대건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어요. 소년은 똑똑하였고 성격이 굳세었으며 진실한 신앙심을 갖고 있었어요. 게다가 그의 집안은 증조부 때부터 천주교를 믿었을 만큼 신앙심이 매우 두터웠어요.
“제가 댁의 아들을 데려다 천주교 신부로 키워볼까 합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김대건의 부모님은 모방의 제안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어요. 오히려 영광스러운 일이었지요.
1836년 7월 김대건은 모방에게 예비 신학생으로 뽑혀 한성으로 올라가게 되었어요. 그해 12월 김대건·최양업·최방제 등 세 신학생은 모방 신부의 소개장을 가지고 마카오로 유학을 하러 가게 되었어요. 그들은 중국 북경을 거쳐 7개월 만에 마카오에 도착하였어요.
김대건 신부의 여정
당시 마카오에는 프랑스 신부들이 운영하는 파리외방전교회가 있어서 여기서 이들을 훈련시키려 했던 것이지요.
마카오는 우리나라와 풍토와 기후가 달랐어요. 김대건은 몸이 약했던 탓에 늘 잔병치레를 해야 했지만, 서양 학문과 성서를 체계적으로 열심히 배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