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건국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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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가 이끄는 고려군은 평양을 거쳐 요동으로 진격했어요. 마지막 국경인 압록강을 건너던 중 강 가운데에 있는 위화도라는 섬에 이르렀어요. 강을 건너 요동으로 가려고 했지만, 장마에 강물이 불어나 쉽게 건너가지 못했어요. 위화도에 머물면서 군사들은 점점 지쳐갔어요.


이성계는 여러 차례 고려 조정에 사람을 보내 비가 많이 와 압록강을 건널 수 없으니 군대를 철수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러나 우왕과 최영은 이성계의 의견을 받아주지 않았어요. 고민 끝에 이성계는 군대를 돌리기로 했어요.


우리는 1388년에 발생한 이 사건을 우리는 위화도 회군이라 불러요. 그때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려 나오자 압록강의 물이 불어나 위화도가 잠겼다고 해요. 그만큼 군대가 위험한 상황이었던 거지요. 이성계는 최영이 무리하게 요동 정벌을 추진했다고 주장했지요. 개경에 도착한 이성계와 조민수는 최영을 귀양보내고 우왕도 폐위시켰어요.


다음 왕위는 우왕의 아들이었던 창왕이 이어받았어요. 하지만 이성계와 그를 따르는 신진 사대부는 우왕이 공민왕의 진짜 아들이 아니라고 주장했지요. 결국 창왕은 폐위되었고, 우왕과 함께 귀양을 떠났어요. 왕위는 왕실의 먼 친척이 잇게 되었는데,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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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도 회군




창왕과 공양왕 시기에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는 고려의 토지 제도를 바꾸었어요. 당시 권문세족들이 불법적으로 많은 땅을 소유해 백성들의 삶이 어려워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권문세족의 땅을 뺏어서 그들의 힘을 줄일 필요도 있었어요. 그리하여 관리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땅문서를 거두어들여 불태워 버리고 토지 제도를 바꾸었어요. 이 제도를 과전법이라 해요.


1391년(고려 공양왕 2) 과전법이 시행되면서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는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인 수조권을 관리들에게 다시 나누어주었지요. 그런데 고려 시대 전시과와 달리 전국의 토지에 대한 수조권을 주지 않고, 경기 지역의 수조권만 나누어 주었어요. 나머지 토지의 세금은 국가에서 직접 걷으니 국가 재정이 늘어나게 되었고요. 세금의 양이 1/10로 줄어 농민의 생활도 안정되었지요. 그리고 관리들은 정부가 직접 거둔 세금을 봉급으로 받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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