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

중국과 일본에까지 천재 여류 시인으로 이름을 떨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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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의 죽음을 듣게 된 허균은 강릉 집에 있던 허난설헌의 시를 찾았어요. 다시 한번 누나의 시를 읽은 허균은 유언대로 불태우기에는 너무나 아깝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강릉 집에 있던 허난설헌의 시와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허난설헌의 시까지 정리하였어요. 이후 허균은 허난설헌의 시를 모은 『난설헌집』을 펴냈고, 이때 당대 유명한 학자였던 유성룡에게 시집의 머리글을 부탁했어요.


임진왜란 중에 명나라 사신이 왔다가 허균을 만나게 되었고, 허균을 통해 허난설헌의 시를 알게 되었어요. 이 사신이 중국에 돌아가서 조선의 시를 소개한 『조선시선』을 펴냈어요. 『조선시선』에 있던 조선의 시들 중에서 특히 허난설헌의 시가 큰 인기를 끌었어요. 이후 1606년 조선을 방문한 명 사신은 허균부터 찾았어요.


“당신의 누나인 허난설헌의 시를 좀 더 볼 수 있습니까?”


“여기 누나의 시를 모은 시집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시를 보신 후에 마음에 드시면 제 누나의 시집을 중국에서 펴낼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아니! 이렇게 인간의 감정을 솔직하면서도 애틋하게 표현한 시는 난생처음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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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집(허균허난설헌기념관)




당시 명 사신에 의해 중국에 알려진 『난설헌집』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어요. 이후 조선에 온 명 사신들은 앞다투어 허난설헌의 시집을 구해달라고 아우성이었어요. 명을 이어 중국을 차지한 청 때도 허난설헌의 시는 여전히 큰 인기를 끌었어요. 그녀의 시를 암송하는 것이 유행할 정도였어요.

그뿐만 아니라 청 황제까지 허난설헌의 시집을 조선에서 구해달라는 요청을 했어요. 허난설헌의 시는 중국뿐만 아니라 1711년 일본에서도 『난설헌집』이 출판되어서 큰 인기를 끌었어요. 이후 일본의 여성 시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지요


허난설헌은 조선 시대에 태어난 뛰어난 여류 시인이었어요. 비록 남성 중심의 조선 사회에서 여러 불행을 겪으며 자신의 재능을 꽃피워보진 못했지만, 끊임없이 시를 쓰며 이를 극복하고자 했어요. 비록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결국 죽은 뒤에 그의 작품들은 한국, 중국,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지요.


여러분들도 지금의 괴로움에 너무 슬퍼하지 말고, 훗날을 기약하며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길 바라요. 언젠가는 그 노력이 좋은 평가를 받을 날이 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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