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고려의 불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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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에는 건물 안에 모셔진 불상뿐만 아니라 실외의 거대한 석조 불상도 유행하였어요. 대표적으로 충남 논산에 있는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을 들 수 있지요. 이 외에 부여 대조사 석조보살입상, 예산 삽교읍 석조보살입상,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등이 있어요.
크기는 대부분 은진미륵보다는 좀 작지만, 몸체를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조각한 뒤 차례로 올려 세우는 방법은 같았어요. 거대하면서 입체감 없는 돌기둥 형태, 비례감 없는 간략한 신체 표현 방법 등은 고려 시대 석불의 지방적인 특징이 잘 보여 주고 있지요.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7호)은 미래 세계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보살을 나타낸 것으로 높이가 10m나 돼요. 불상 위 머리 위 덮개 부분에는 네모난 관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사각형으로 넓적하며, 양쪽 귀와 눈은 크나 코와 입이 작아서 다소 비현실적인 느낌이에요. 어깨를 감싼 옷은 두껍고 무거워 보여 투박한 모습이에요.
예산 삽교읍 석조보살입상(보물 제508호)은 2개의 돌을 이어서 조각한 석불로 충청남도 예산군 수암산 중턱에 있어요. 머리에는 두건 같은 관을 쓰고 있고, 그 위에 6각으로 된 갓 모양의 넓적한 돌을 올려놓았지요. 어깨의 윤곽은 아래로 내려가면서 조금씩 넓어지지만, 입체감 없이 밋밋하여 마치 돌기둥 같지요.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제100호)도 거대한 불상으로 마치 네모난 기둥 같지요. 머리에는 커다란 사각형의 갓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어색하게 큰 편이에요. 또 몸과 어울리지 않게 팔과 손을 붙여 비현실적인 모습을 하고 있지요.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문화재청
바위에 새긴 불상을 마애불이라고 해요. 고려에는 이런 마애불을 흔히 볼 수 있어요. 마애불에는 커다란 바위에 불상을 얇게 새긴 것도 있고, 몸체만 새기고 머리 부분은 만들어 올린 것도 있지요. 머리에는 낮은 보관과 천개를 올렸어요. 천개는 ‘하늘 가리개’로서 야외에 새겨진 불상에 눈비가 닿지 않도록 모자처럼 씌운 것이에요.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얼굴과 보관 및 천개,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뒷면
문화재청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 입상(보물 제93호)은 거대한 자연 암벽에 새긴 2구의 불상이에요. 왼쪽 둥근 갓을 쓴 불상은 원통형의 목에 두 손은 가슴 앞에서 연꽃을 쥐고 있고, 오른쪽 4각형 갓을 쓴 불상은 합장한 손 모양만 다를 뿐 왼쪽 불상과 같은 모양이에요. 머리 위에는 돌갓을 얹었고, 자연석 그대로 조각하여 신체 비율이 맞지 않아 토속적인 분위기가 느껴지지요.
안동 이천동 마애여래입상(보물 제115호)은 자연 암벽에 신체를 선으로 새기고 머리는 따로 새겨 올려놓은 12미터가 넘는 거대한 불상이에요. 상투 모양의 머리가 높이 솟아 있고, 얼굴에는 자비로운 미소가 흐르고 있어 전체적인 형태는 자연스러운 편이에요. 양손은 검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어 왼손을 가슴에 대고, 오른손을 배에 대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요.
서울 북한산 구기동 마애여래좌상, 보은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
문화재청
이 밖에 6미터 높이의 보은 법주사 마애여래의좌상(보물 제216호)이 있어요. 또 서울 북한산에 가면 서울 북한산 구기동 마애여래좌상(보물 제215호)을 볼 수 있어요. 이렇듯 여러 산을 다니다 보면 의외로 거대한 마애불상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철불은 통일 신라 후기부터 고려 초기에 이르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많이 만들어졌어요. 철로 불상을 만드는 것은 재질의 특성상 매우 어려운 일이었어요. 그런데도 왜 이 시기에 철로 불상을 만들었을까요? 당시 무역이 원활하지 않아 수요가 많았던 금동불의 재료인 구리가 부족하였기 때문이에요. 또 널리 퍼져있는 사치스런 불교 행사를 삼가는 분위기도 있었고요. 이러한 상황에 철은 몇 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구리를 대신해 불상을 만드는 재료가 되었지요.
대표적인 철불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하남 하사창동 철조석가여래 좌상(보물 제332호)이 널리 알려져 있어요. 이 불상은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하사창리의 절터에서 발견된 고려 초기의 철불이에요. 높이가 2.8미터, 그 무게는 무려 6.2톤에 이르지요.
하사창동의 절터에는 ‘천왕’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 조각이 발굴되었고, 고려 초기 비문에 ‘광주 천왕사’라는 기록이 있어 이 철불이 발견된 곳은 천왕사가 있었던 곳으로 여겨지고 있어요. 얼굴은 둥글지만 치켜 올라간 눈, 꼭 다문 작은 입, 날카로운 코의 표현에서 고려 시대 불상의 특징을 엿볼 수 있지요. 당당한 어깨와 두드러진 가슴은 통일 신라 석굴암 본존불의 양식을 이어받고 있음을 알 수 있어요. 철불 특유의 날카로운 인상에 비해 신체는 완만하고 전체 비례도 안정감이 있어요. 통일 신라 철불보다 부분 이음매가 훨씬 부드러워 제작 기술이 발전했음을 보여주고 있어요.
충주 철조여래좌상(보물 제98호)은 높이 0.98m의 철로 만든 고려 초기의 불상이에요. 머리에는 날카롭고 뾰족한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가 있어요. 삼각형에 가까운 얼굴, 길고 넓은 눈, 꽉 다문 입가로 내려오는 팔자형의 주름 등에서 근엄한 인상을 보여주고 있어요.
충주 철조여래좌상, 양평 용문사 금동관음보살좌상,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문화재청
금동불은 가장 화려하며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불상이에요. 주로 금당에 모셔 두지요. 하지만 화재나 도난, 해외 유출 등으로 인해 많이 남아 있는 편은 아니에요. 고려 시대 금동 불상으로는 양평 용문사 금동관음보살좌상(보물 제1790호) 등이 있어요. 황금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불상은 사람들에게 고귀하고 성스러운 부처님을 만나게 하지요.
목불은 나무로 만든 만큼 오래가지 못해 전하는 것이 아주 드물어요. 근래 화성 봉림사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보물 제980호)이 고려 후기 이전에 만든 것으로 확인되었지요.
이 밖에 나무로 골격을 세우고 진흙을 붙여 가면서 만든 소조불이 있어요. 소조는 재료라기보다 제작 방법이에요. 고려 시대의 소조불은 그 사례가 흔치 않은 편이어서 이름에 ‘소조’자를 붙여주고 있지요. 대표적으로 경상북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안에 있는 부석사 소조여래좌상(국보 제45호)이 있어요. 이 불상은 우리나라 소조 불상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것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