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에 담긴 역사
컨텐츠 정보
- 3 조회
- 목록
본문
1904년 화재를 당한 이 궁궐은 바로 덕수궁이에요. 조선 5대 궁궐 중 하나로 대한 제국 황실의 궁궐이었어요. 덕수궁이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임진왜란 때예요. 전쟁 당시 평안도 의주로 피난 갔던 선조가 다시 돌아왔을 때 경복궁, 창덕궁은 이미 불타버린 상황이었어요.
돌아갈 궁궐이 없었던 선조는 임시로 월산대군(성종의 형)의 집에 머물렀는데, 이곳이 바로 지금의 덕수궁 자리에요. 왕이 머물던 곳이라 정릉동 행궁이라고 불렀어요. 행궁은 왕들이 임시로 머무는 궁을 말해요.
선조에 이어 광해군이 왕위에 올랐는데, 그는 창덕궁으로 옮겨갔어요. 그러면서 정릉동 행궁에 건물을 더 짓고 확장했어요. ‘국가의 기운을 드높이는 궁’이라는 뜻의 ‘경운궁’이라는 이름도 붙여주었지요. 하지만 경운궁은 궁궐이라고 부르기에는 초라한 모습이었고, 조선도 이 궁궐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어요.
광해군이 왕의 자리를 위협하는 이복동생인 영창대군을 귀양 보내고, 영창대군의 어머니인 인목대비를 경운궁에 가두었어요. 이후 서인 일파가 인조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왕의 자리에 앉혔어요. 인조가 즉위식을 거행한 곳이 바로 경운궁이에요.
인조가 즉위한 이후 더 이상 경운궁은 궁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세월이 흘렀어요. 경운궁이 다시 우리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은 명성황후가 일본에 비참하게 살해되는 사건(을미사변)이 일어난 1895년 이후 일이에요.
을미사변 이후 자신의 목숨도 안전하지 않다고 여긴 고종은 1896년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옮겼어요. 고종은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본에 맞서려고 했던 것이었어요. 하지만 신하들과 백성들의 원성에 1년 만에 궁궐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그 궁궐이 바로 경운궁이었어요. 경운궁은 러시아 공사관과 멀지 않고, 주변에 외국 여러 나라의 공사관이 있어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위치였어요.
경운궁으로 돌아온 고종은 이후 나라의 이름을 ‘대한 제국’으로 바꾸고,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며 황제국 다운 국가 체제를 갖추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어요. 황제가 머무는 궁궐에 맞게 경운궁도 새롭게 변화하기 시작하지요. 하지만 외국의 세력 다툼 장소로 변해버린 한반도는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요.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기고, 1907년에는 경운궁도 이름을 덕수궁으로 바꾸어야 했지요. 1910년 대한 제국은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고 나라를 잃는 처지가 되었어요.
지금부터 대한 제국 황실의 궁궐이었던 덕수궁에 담긴 아픈 역사를 살펴보며, 경운궁이 왜 덕수궁으로 바뀌었는지 알아보아요. 또 궁궐의 원래 모습이 지금과는 어떻게 달랐는지도 함께 살펴볼까요?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