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에 의해 처형되다
컨텐츠 정보
- 1 조회
- 목록
본문
전쟁터를 주름잡던 최영은 문하시중이라는 최고의 관직에 올랐어요. 이때 중국에서 새로 등장한 명이 공민왕 때 원에게서 되찾은 철령 이북의 땅을 문제 삼고 나왔어요. 원을 명이 차지했으니 원의 땅이었던 철령 이북의 땅도 명의 땅이라는 주장이었어요. 명의 어처구니없는 주장에 크게 화가난 최영은 요동 정벌을 주장하였어요. 요동은 옛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였죠. 최영은 이 기회에 요동을 다시 찾고자 했어요.
최영은 총사령관이 되어 이성계에게 5만 명의 군사를 주며 요동을 점령하라 지시하였어요. 그런데 요동을 공격하러 가던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려 개경으로 돌아와 최영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았어요. 안타깝게도 최영은 이성계에 의해 경기도 고양으로 귀양을 간 후 역모 죄로 처형되었지요.
최영은 다음과 같이 유언하며 최후를 맞이하였어요.
내가 탐욕스러운 마음이 있었다면 내 무덤에 풀이 자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풀이 자라지 않을 것이다.
이후 실제로 그의 무덤에는 풀이 자라지 않았고, 사람들은 최영의 무덤을 적분(붉은 무덤)이라 불렀지요. 혼란한 고려 말 오직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했던 충신 최영 장군은 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어요.
늙은 몸을 이끌고 외적을 물리친 최영! 그는 명이 아직 혼란스러운 때를 노려 요동을 다시 찾고자 했지요. 만약 그의 뜻대로 이성계가 요동을 정벌했다면 또 어떤 역사가 만들어졌을까요?
최영 장군의 묘(경기 고양시)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