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아우내 장터에서 벌어진 만세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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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내려가 보니 아버지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만세 운동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유관순도 주변 지역 학교와 교회를 찾아다니며 뜻을 함께할 사람들을 모았어요. 발이 부르트도록 걷고 또 걸으며 사람들을 찾아다녔지요.


“삼천리강산이 만세 운동으로 들끓고 있습니다. 어찌 우리 동네만 아무 일 없이 잠잠할 수 있겠습니까?”


“만세 운동을 벌이기 전날, 매봉산 봉우리에 봉화를 피울 것입니다.”


유관순의 말대로 매봉산 정상에서 불길이 타오르자, 주변의 20여 곳이 넘는 산봉우리에서 불길이 타오르며 만세 운동이 일어날 것을 알렸지요.


4월 1일 아침, 천안의 병천 아우내 장터에 약 3천여 명에 가까운 많은 사람이 모여 들었어요. 유관순은 사촌 언니, 그리고 남동생과 함께 만든 태극기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어요.


얼마 후 긴 장대에 큰 태극기가 펄럭였어요. 그리고 한 사람이 나와 독립 선언서를 읽어 내려갔어요. 유관순도 단상 위로 올라가 연설을 했지요.

“나라 없는 백성이 어찌 백성이라 하겠습니까? 다 같이 독립 만세를 불러 나라를 찾읍시다.”


그녀의 외침에 아우내 장터에 모인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태극기를 흔들며 소리 높여 만세를 불렀어요. 장터는 펄럭이는 태극기와 드높은 만세 소리로 가득했어요. 시위대 맨 앞에는 유관순의 아버지가 서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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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내 장터에서의 만세 운동




아우내 장터의 만세 운동 소식을 전해 들은 일본 헌병들이 출동해 시위대를 막아섰어요. 무지막지하게 총을 쏘아대고 칼을 휘둘렀지요. 일본 경찰의 거침없는 공격에 많은 사람이 쓰러졌어요. 20여 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쳤다고 해요. 유관순의 부모도 이때 목숨을 잃었답니다.


“아버지, 어머니! 누가 저 좀 도와주세요.”


유관순은 쓰러져 있는 부모님의 시신을 끌어안고 통곡했어요. 분노를 떨칠 수 없었던 유관순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부모님의 시신을 둘러업고, 일본 헌병들이 있는 주재소로 달려갔어요.


“제 나라를 되찾으려고 정당한 일을 했는데 어째서 총기를 사용하여 내 민족을 죽이느냐?”


유관순은 분노를 터트리고 항의해 보았지만 소용없었어요. 오히려 유관순마저 만세운동의 주도자로 체포되어 공주 교도소로 넘겨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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