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연암, 『열하일기』에 자신의 생각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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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이웃 나라 청은 조선에 비해 서양과 교류가 많았어요. 과학 기술 등의 문화도 조선에 비하면 훨씬 앞서 있었지요. 때문에 조선의 선비 박지원은 청을 여행하며 깜짝 놀랄 경험들을 많이 했어요. 우물 안 개구리 같았던 박지원의 시야가 세계를 향해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지요.


박지원은 청을 여행하며 보고 듣고 느낀 점을 글로 남겨 놓았어요. 이 기록이 바로 조선 최고의 베스트셀러이자 오랜 세월이 흘러서까지 최고의 여행기로 꼽히는 『열하일기』에요.


“벽돌로 쌓은 담장, 잘 닦여진 도로, 수레를 끌고 가는 청의 사람들처럼 우리 조선도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게 『열하일기』를 써서 알려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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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왕실도서관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




청에 다녀 온 후 박지원은 발달된 청의 문물을 들여와야 한다는 북학 사상을 주장하였어요. 청에서 활발하게 장사를 하는 모습, 또 다양한 규모의 공장에서 물건을 만드는 모습을 보았어요. 그리고 상업과 공업이 농업보다 훨씬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조선도 상공업을 발달시켜 경제가 더욱 활발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지요. 특히 그중에서도 수레의 이용을 강조하였지요.


박지원이 본 새로운 세상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조선 사회는 박지원의 생각대로 변화하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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