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청, 서경으로 도읍을 옮기자고 건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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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겸을 제거한 인종은 나라를 새롭게 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어요.
“고려의 자존심도 땅에 떨어지고 백성들의 마음도 모을 수 없고, 새롭게 변화할 계기가 필요한데……”
묘청의 서경 천도 주장
그는 서경으로 갔어요. 서경은 옛 고구려의 도읍으로 ,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이 중요시하며 북진 정책 기지로 삼았던 곳이지요. 이후 왕들은 서경을 중시하라는 태조의 가르침에 따라 정례적으로 방문하였지요. 당시 서경 지역에서는 여러 가지 술법을 펼친 묘청 등이 널리 알려졌어요. 그를 인종에게 추천한 사람은 서경 출신인 정지상이에요.
묘청 일파는 인종에게 도읍을 옮기고, 새로운 정치를 펼칠 것을 주장했어요.
“개경(개성)은 이미 기운이 땅에 떨어지고 궁궐도 불타 남은 것이 없습니다. 서경은 왕의 기운이 드높으니 마땅히 이곳으로 도읍을 옮기셔야 합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금이 공물을 바치고 스스로 항복할 것이며, 주변의 서른여섯 나라가 모두 머리를 조아릴 것입니다.”
묘청 일파는 자신들과 뜻을 함께 할 신하들을 모았어요.
“우리가 왕에게 도읍을 서경으로 옮길 것을 주장합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공신이 되어 떵떵거리며 살 수 있고, 우리의 자손들도 복되게 살 수 있을 것이오.”
묘청을 지지하는 신하들은 왕에게 글을 올렸어요.
“묘청은 성인입니다. 그가 한 말은 무엇이든 받아들여 나랏일을 해야 나라가 잘 될 것입니다.”
여러 신하들은 이 의견에 동의했고, 왕의 마음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왕은 풍수지리와 불교, 도교를 공부한 묘청의 뜻을 받아들이려고 했어요. 서경 세력과 손잡고 새로운 정치를 펼칠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묘청 등 서경 세력에 맞서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중 한 사람이 바로 김부식이에요. 유학을 공부해 관리가 된 사람이었지요.
해동지도 평양부 지도(1750년대 초 제작)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