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업

후금이 힘을 키워 조선을 침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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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7년 정묘년에 후금이 조선을 쳐들어왔어요. 당시 조선의 임금이었던 인조와 신하들은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운 명의 은혜를 배신하면 안 된다며 명과 경쟁하며 힘을 키워가는 후금을 멀리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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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반정과 광해군의 몰락




점차 힘이 세진 후금은 자기 나라를 멀리하고 자기들의 경쟁 상대인 명과 친하게 지내는 조선이 영 못마땅했어요. 기회를 엿보던 후금은 광해군이 인조에게 억울하게 쫓겨났다며 조선을 공격했어요. 바로 정묘호란이에요. 당시 방어 준비가 덜 된 조정은 강화도로 급하게 피난을 갔어요. 후금의 계속되는 공격에 조정에서는 어쩔 수 없이 후금과 형제 국가임을 인정하게 되었어요.


이 때 임경업은 땅을 치며 아쉬워했어요. 강화도로 달려가 후금과 맞서 싸우려 했지만 이미 후금과 형제 국가가 되겠다는 발표를 들었기 때문이에요.


‘이 날의 치욕은 내 잊지 않겠다!’


임경업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군사를 튼튼히 훈련시키고 성곽을 잘 관리했어요. 이런 임경업의 모습을 지켜 본 조정에서는 임경업에게 후금의 공격을 막을 수 있게 북쪽 지역을 방어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겼어요. 임경업은 이에 치밀하게 성곽을 돌보고 군사 훈련을 지휘하면서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했어요.

1636년 병자년 4월, 이전보다 훨씬 힘이 강해진 후금은 나라 이름을 청이라고 바꾸고 조선에 사신을 보내 임금과 신하의 예를 갖추라며 요구했어요. 하지만 조선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인조는 청나라 사신을 만나주지 않았어요. 결국 그해 12월 청나라 황제가 직접 조선을 공격했어요. 병자호란이 일어난 것이에요.


이 때 청의 군대는 조선의 명장 임경업이 굳게 지키고 있던 의주의 백마산성을 지나쳐 한양을 바로 공격했어요.


청의 군대가 한양으로 쳐들어오자 조선의 임금과 대신들은 깜짝 놀라 남한산성으로 가서 맞서 싸우려 했어요. 하지만 강력한 청의 군대를 막아낼 수 없었어요. 결국 인조는 항복을 하며 치욕적으로 청에 신하의 예를 갖추었어요.


사실 이 때 인조의 치욕보다 참담했던 것은 전쟁으로 죽거나 다친 조선의 백성들이었어요. 게다가 수많은 백성들이 청에 포로로 끌려갔어요. 여러모로 병자호란은 조선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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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군에게 포위된 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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