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노동력을 활용해 싼값의 제품을 생산해 수출하다
컨텐츠 정보
- 3 조회
-
목록
본문
1961년 군사 정변을 통해 정권을 잡은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군인들은 잘 먹고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1962년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웠어요. 박정희 정부는 국가가 경제 발전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보았지요.
그리고 자원도 기술도 수입해야 하는 입장에서 유일한 장점인 값싼 노동력을 적극 활용하여 상품을 만들어 외국에 수출하는 것이 경제 성장을 위한 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수출만이 살길이다’라는 구호가 등장하기도 했어요. 초기의 수출 상품은 주로 섬유, 봉제, 신발이었어요. 가발은 수출 품목 중 1위에 해당하는 것이었지요.
1960년대 들어 원조는 줄어들었고, 돈이 필요하다면 차관으로 외국에서 빌려야 했어요. 박정희 정부는 외국 자본 도입에 적극적이었지요. 또 한국을 식민지로 다스렸던 일본이 제대로 된 사과와 책임 있는 반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데도 일본과 수교 협정을 맺고 식민지 배상금 명목의 돈을 받았지요.
또 베트남 전쟁에 미국을 도운다며 한국 군인들을 보냈는데, 이는 전쟁에 참여해 돈을 벌어들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특히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일본과 벌인 수교 협상을 두고 학생과 지식인들은 시위를 하며 반대 운동을 벌이기도 했어요.
서울 구로공단, 청계천 평화 시장 등에는 농촌에서 올라온 어린 노동자들이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고된 노동을 했어요. 한국의 빠른 경제 성장은 바로 이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지요.
가발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