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

가장 어려운 순간, 『동의보감』을 완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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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허준에게 위기가 찾아왔어요. 선조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1608년 선조가 세상을 떠나자, 허준은 유배를 가야 했어요. 당시에는 왕이 죽으면 왕을 치료했던 의원이 책임을 안고 벌을 받았거든요.

왕위에 오른 광해군은 허준이 유배 가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치료하고 백성들을 위해 노력했던 허준의 모습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허준을 유배 보낼 수밖에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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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을 쓰고 있는 허준


하지만 허준은 좌절하지 않고 용기를 냈어요. 오히려 평생을 걸쳐 연구했지만 막상 정리하지 못했던 의학 책들을 쓸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선조가 편찬을 명했던 의학책을 꼭 완성시키고자 했어요. 중국 의학책이 아닌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의학책을 쓰겠다며 마음을 다 잡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그 결실을 보았어요.

1609년 광해군은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허준을 다시 내의원으로 복귀시켜 자신의 건강을 돌보게 했어요. 71살의 허준은 궁궐로 돌아와서 자신을 믿고 불러준 왕에게 인사를 드렸어요.


“전하, 지난 왕께서 명하셨던 책을 이렇게 완성해서 올립니다.”


광해군은 보자기에 싸인 책들을 보면서 깜짝 놀랐어요.


“유배지에서 힘들게 지냈을 터인데, 이토록 귀한 책을 완성했다니, 참으로 장하오!”


광해군뿐만 아니라 신하들도 허준의 『동의보감』을 보면서 감탄했어요. 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고 상처받은 백성들을 치료하는데 도움을 줄 의학 백과사전이 나왔기 때문이에요. 광해군은 이 책을 인쇄해서 전국에 널리 나누었어요.


이 책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도 알려져, 우리나라를 찾는 사신들은 이 책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허준은 이후에도 진료와 의학책들을 펼쳐내면서 활약하다가 1615년 일흔일곱의 나이로 눈을 감았어요.

중국에서도 『동의보감』은 주목받았어요. 의학을 공부하려면 꼭 이 책을 읽어야 한다면서 『동의보감』을 천하의 보물이라고도 소개했어요. 『동의보감』은 오늘날에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뽑혔어요.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허준을 기억하는 까닭은 『동의보감』처럼 훌륭한 책을 쓴 것뿐 아니라 신분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환자만을 생각하며 최선을 다한 의원이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사실 『동의보감』을 쓴 것도 환자들을 꼭 낫게 하겠다는 마음과 정성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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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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