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어요. 그런데 그때까지 조선은 아직 세자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전란 중에 임금이 잘못될 수도 있어 세자 책봉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어요.사실 광해군은 임금의 후궁인 공빈 김씨에게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둘째 아들이었기 때문에 세자 책봉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그런데 당시 적자는 없었고, 형인 임해군은 말썽을 자주 일으켰어요. 반면 동생 광해군은 어질고 총명하였지요.왜군들의 기세는 거침이 없었고, 전쟁 상황은 점점 더 조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어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세자를 빨리 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났고, 선조와 신하들은 광해군을 세자로 결정했어요. 그렇게 세자가 된 광해군은 선조를 따라 피난길에 올랐어요.“전하, 이 땅을 버리고 떠나시면 나라는 어찌되겠습니까?”“그렇습니다. 백성은 누구를 의지하고 살란 말씀이옵니까?”신하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 선조는 중국에 원병을 청한다는 구실로 급히 의주로 피난하였어요.이때 세자 광해군은 선조를 대신해 전란을 지휘하였어요. 그러자 분전하는 세자의 소식을 듣고 합류하는 사람들이 늘어갔어요. 도망가는 조정을 보며 흩어졌던 민심도 다시 모이기 시작했지요.“세자께서 비바람 속에서도 산중에서 조선을 이끌고 있소”“와~ 이제 우리도 왜군들에 맞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