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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한국사(KOREAHISTORY) &amp;gt; 조선사 &amp;gt; 광해군</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gwanghaegun</link>
<language>ko</language>
<description>광해군 (2025-05-08 17:18:06)</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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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실리적인 외교를 펼치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gwanghaegun/5</link>
<description><![CDATA[<p>“전하, 명이 우리에게 지원병을 요청하옵나이다.”</p><p><br /></p><p>임진왜란이 끝나고 북방 정세는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어요. 명은 국력이 약해져 점점 망해 가고 있었어요. 반면 만주에서는 누루하치 세력을 중심으로 한 여진족이 급성장하고 있었지요. 세력을 키운 여진족은 후금이라는 나라를 세웠어요. 이에 위협을 느낀 명은 조선에게 후금을 치고자 하니 군사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어요.</p><p>‘지금 명은 약해지고 있고 후금은 강해지고 있다. 섣불리 우리 군사를 보냈다가는 위험해질 게 뻔하다.’</p><p><br /></p><p>‘군사를 보내면 여진과 적이 될 터 뒷감당을 어찌하겠는가?’</p><p><br /></p><p>그간 국제 정세를 잘 알고 있던 광해군의 고민은 깊어만 갔어요.</p><p><br /></p><p>“전하, 즉시 지원병을 보내야 합니다. 명은 임진왜란 때 우리를 도와주었던 은혜의 나라이옵니다.”</p><p><br /></p><p>“그렇습니다. 전하, 명은 우리 사대부들에게 아버지의 나라이옵니다. 어찌 군신의 도리를 져버리려 하시옵니까?”</p><p><br /></p><p>대부분의 신하들은 명과의 의리를 생각해 군사를 보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였어요. 고민을 거듭하던 광해군은 드디어 결단을 내렸어요.</p><p><br /></p><p>“강홍립 장군에게 1만의 병사를 주어 명을 도우라 하시오.”</p><p><br /></p><p>그런 후에 광해군은 강홍립 장군을 따로 은밀히 불렀어요.</p><p>“그대에게 특별히 당부할 것이 있소. 싸우더라도 적극적으로 싸우지는 마시오. 지금 명은 국론이 분열되어 있고 누르하치의 세력은 강하니 우리가 후금을 이길 수는 없소.”</p><p><br /></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3235224eb038b74358a84e9961ee488c_1746692262_9485.JPG" title="3235224eb038b74358a84e9961ee488c_1746692262_9485.JPG" alt="3235224eb038b74358a84e9961ee488c_1746692262_9485.JPG" /><br style="clear:both;" />광해군의 중립 외교</p><p><br /></p><p><br /></p><p><br /></p><p><br /></p><p>조선군과 명군은 후금의 대군과 만나 격렬히 싸웠어요.</p><p><br /></p><p>“물러서지 마라! 조·명 연합군이라고 별 볼일 없구나.”</p><p><br /></p><p>후금은 명군을 총공격하였고, 명군은 크게 패하고 말았어요. 기회를 엿보던 강홍립의 조선군도 후금에 항복하였지요. 이 소식을 전해들은 조선 조정은 발칵 뒤집혔어요.</p><p>“싸우러 간 장수가 투항하였으니 강홍립을 처벌하소서.”</p><p><br /></p><p>이런 신하들에 대해 광해군은 오히려 꾸짖어 말했어요.</p><p><br /></p><p>“그대들은 어찌 나라 밖 돌아가는 사정을 모른다 말이오. 어차피 명은 망할 것이오. 우리가 저 강해진 후금을 이길 수 있다 보오? 우리에게는 백성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오.”</p><p><br /></p><p>조선의 속뜻을 안 후금은 화친의 사신을 보내 왔어요. 명은 조선의 의도를 의심했지만, 광해군은 외교적 계책으로 이를 극복하였지요.</p><p><br /></p><p>조선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실리적인 외교를 펼쳤기에 큰 전란을 피할 수 있었어요. 광해군은 나라와 백성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외교를 하였던 것이지요.</p><p><br /></p><p>그런데 광해군은 자신의 왕권을 위협하는 존재라는 이유로 배다른 동생인 영창대군을 죽이고 말았어요. 새어머니이자 영창대군의 친어머니인 인목 대비도 궁에 가두어 버렸어요. 이러한 광해군의 행동은 사람의 도리를 중시하던 당시 사람들에게 쉽게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지요. 이 일은 광해군을 반대하는 세력들에게 좋은 빌미가 되었어요. 결국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은 왕의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었어요.</p><p>광해군은 여러가지 중요한 업적을 남겼지만, 쫓겨난 임금이었기 때문에 ‘조’, ‘종’ 같은 왕의 정식 명칭과 ‘능’과 같은 왕 지위의 무덤을 갖지 못하였어요. 그런 광해군에 대해 과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08T17:18:06+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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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대동법을 실시하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gwanghaegun/4</link>
<description><![CDATA[<p>오늘날 국민들은 나라에 세금을 내고, 나라는 이 세금으로 필요한 일을 하지요. 조선 시대도 마찬가지였어요. 토지에 매기는 조세, 군사의 의무를 져야하는 군역, 그리고 각 지방의 유명한 특산물을 내게 하는 공납이 있었어요.</p><p><br /></p><p>특히 공납은 백성들에게 아주 큰 부담을 주었어요. 해마다 내야 하는 특산물은 정해져 있었어요. 게다가 그 지역에서 나지도 않는 물품을 내야하는 일까지 생겼어요.</p><p><br /></p><p>“올해에도 난 특산물을 구하러 먼 지역까지 다녀와야 하네.”</p><p><br /></p><p>“그마저 구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p><p><br /></p><p>“지난번 수산물은 운반 도중 죄다 썩어 곤란했다네.”</p><p><br /></p><p>해마다 백성들은 특산물을 준비하느라 난리였어요. 백성들의 허리는 휠 지경이었지요.</p><p><br /></p><p>그러다 보니 특산물을 대신 내주고 이자를 붙여 대가를 받는 일이 생겨났어요. 이를 방납이라 해요. 언뜻보면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듯 보였어요. 하지만 방납을 담당하는 이들은 관아와 짜고 자신들이 마련한 물건이 아니면 퇴짜를 놓아 버렸어요.</p><p>“최고의 품질이 아니다. 불합격! 다시 준비하시오.”</p><p><br /></p><p>어느새 이들을 통하여만 공물을 낼 수 있게 되어 버렸지요.</p><p><br /></p><p>“이제 가격은 우리가 마음대로 결정한다.”</p><p><br /></p><p>공물을 독점한 방납으로 인해 공물의 가격은 폭등하였어요. 방납으로 인해 백성들의 부담은 오히려 훨씬 커져 버렸어요.</p><p><br /></p><p>백성들 중에는 빚에 쪼들려 고향을 떠나 떠돌아다니는 경우까지 생겼어요. 이로 인해 나라의 수입도 줄어들었어요.</p><p><br /></p><p>“전하, 방납 때문에 백성들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p><p><br /></p><p>“앞으로 공납은 특산물 대신 쌀로 통일해서 내도록 하겠소.”</p><p><br /></p><p>광해군은 모든 공물을 지역 특산품 대신 쌀, 옷감 등으로 대신 내도록 하였어요. 이를 ‘대동법’이라고 해요.</p><p><br /></p><p>1608년 5월 대동법은 우선 경기도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실시되었어요. 경기도 백성들의 반응은 상당히 뜨거웠어요.</p><p>대동법이 우리 백성들의 삶을 살렸다.</p><p><br /></p><p>대동법 시행은 당시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었어요. 방납을 통해 경제적으로 이득을 보던 세력들은 거세게 반발하였어요. 그럼에도 광해군은 경기도에서의 대동법 시행을 끝까지 지켜냈어요.</p><p><br /></p><p>이후 대동법은 점차 확산되어 17세기 후반에는 전국적으로 시행되었어요. 대동법의 시행은 농민들의 부담을 크게 줄여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3235224eb038b74358a84e9961ee488c_1746692006_8716.JPG" title="3235224eb038b74358a84e9961ee488c_1746692006_8716.JPG" alt="3235224eb038b74358a84e9961ee488c_1746692006_8716.JPG" /><br style="clear:both;" />대동법시행기념비(경기 평택시)</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08T17:13:39+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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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어렵게 왕위에 오르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gwanghaegun/3</link>
<description><![CDATA[<p>전쟁이 끝나면 당연히 광해군이 그 다음 왕위를 이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지요. 위험한 전쟁터에서 선조를 대신해 조선을 성공적으로 잘 이끌었으나 돌아온 것은 칭찬이 아니라 견제였어요.</p><p><br /></p><p>명도 전란을 이끌었던 광해군의 활약을 높이 평가하였지만, 어찌 된 일인지 세자 책봉은 승인하지 않았어요.</p><p><br /></p><p>“세자는 당연히 장자가 되어야 한다. 받아들일 수 없다!”</p><p>광해군은 세자로 있으면서도 불안해졌어요. 반면 전쟁 중에 뚜렷한 역할을 하지 못해 위신을 크게 잃은 선조는 내심 이러한 상황을 방관하면서 광해군을 견제하고자 했어요.</p><p><br /></p><p>그러던 중 선조는 새로운 왕비를 맞아들였고, 이들 사이에서 영창대군이 태어났어요. 선조는 매우 기뻐하였어요. 아에 몇몇 신하들은 노골적으로 영창대군을 세자로 만들고자 하였어요.</p><p><br /></p><p>‘걱정이구나. 명은 세자로 인정할 수 없다 하고, 아바마마는 날 미워하는 것 같고. 적자인 영창대군마저 태어났으니…’</p><p><br /></p><p>영창대군이 태어남으로써 명과 선조의 견제를 받는 광해군의 앞날이 더 불확실해졌어요.</p><p><br /></p><p>광해군은 이럴수록 몸을 더욱 낮추고 숨죽여 지냈어요. 행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까봐 조심 또 조심했어요.</p><p><br /></p><p>그러다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어요. 선조가 돌연 쓰러져 자리에 눕게 된 것이에요. 사태는 긴박하게 돌아갔지요. 특히 영창대군을 세자로 삼고자 했던 신하들에게는 큰 위기가 아닐 수 없었어요. 결국 선조가 죽고, 광해군은 선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게 되었어요.</p><div><br /></div>]]></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08T17:10:54+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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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전쟁터에서 나라를 이끌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gwanghaegun/2</link>
<description><![CDATA[<p>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어요. 그런데 그때까지 조선은 아직 세자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전란 중에 임금이 잘못될 수도 있어 세자 책봉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어요.</p><p><br /></p><p>사실 광해군은 임금의 후궁인 공빈 김씨에게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둘째 아들이었기 때문에 세자 책봉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그런데 당시 적자는 없었고, 형인 임해군은 말썽을 자주 일으켰어요. 반면 동생 광해군은 어질고 총명하였지요.</p><p><br /></p><p>왜군들의 기세는 거침이 없었고, 전쟁 상황은 점점 더 조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어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세자를 빨리 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났고, 선조와 신하들은 광해군을 세자로 결정했어요. 그렇게 세자가 된 광해군은 선조를 따라 피난길에 올랐어요.</p><p><br /></p><p>“전하, 이 땅을 버리고 떠나시면 나라는 어찌되겠습니까?”</p><p><br /></p><p>“그렇습니다. 백성은 누구를 의지하고 살란 말씀이옵니까?”</p><p><br /></p><p>신하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 선조는 중국에 원병을 청한다는 구실로 급히 의주로 피난하였어요.</p><p>이때 세자 광해군은 선조를 대신해 전란을 지휘하였어요. 그러자 분전하는 세자의 소식을 듣고 합류하는 사람들이 늘어갔어요. 도망가는 조정을 보며 흩어졌던 민심도 다시 모이기 시작했지요.</p><p><br /></p><p>“세자께서 비바람 속에서도 산중에서 조선을 이끌고 있소”</p><p><br /></p><p>“와~ 이제 우리도 왜군들에 맞서 제대로 싸워 봅시다.”</p><p><br /></p><p>“지난번 전투도 세자께서 군사들을 격려해서 이겼다 하오.”</p><p><br /></p><p>군사들의 사기는 높아졌고, 백성들은 희망을 갖게 되었어요. 광해군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위험천만한 전쟁터 한복판으로 들어가 사실상 나라의 중심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어요.</p><p><br /></p><p><br /></p><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3235224eb038b74358a84e9961ee488c_1746691758_9647.JPG" title="3235224eb038b74358a84e9961ee488c_1746691758_9647.JPG" alt="3235224eb038b74358a84e9961ee488c_1746691758_9647.JPG" /><br style="clear:both;" />백성들을 이끄는 광해군</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08T17:09:32+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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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광해군, 외교의 중심을 잡다</title>
<link>http://www.koreahistory.xyz/gwanghaegun/1</link>
<description><![CDATA[<p><img src="http://www.koreahistory.xyz/data/editor/2505/3235224eb038b74358a84e9961ee488c_1746691547_5508.JPG" title="3235224eb038b74358a84e9961ee488c_1746691547_5508.JPG" alt="3235224eb038b74358a84e9961ee488c_1746691547_5508.JPG" /><br style="clear:both;" />광해군 묘(경기 남양주시)</p><p><br /></p><p><br /></p><p><br /></p><p>“큰일 났네, 큰일 났어. 함경도마저 왜군에 짓밟히고, 임금님은 도망 다니기에 바쁘니. 이 나라가 어찌 될꼬.”</p><p><br /></p><p>“자네 아직 소식 못 들었는가? 세자께서 싸움터를 누비며 나라를 이끌고 계신다네. 이 덕에 우리 군의 사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하네.”</p><p><br /></p><p>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왜 세자가 전쟁터에서 선조 대신 조선을 이끌게 된 것일까요? 이 세자는 누구일까요?</p>]]></description>
<dc:creator>지금</dc:creator>
<dc:date>2025-05-08T17:06:05+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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