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룡

지난 잘못을 반성하며 『징비록』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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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은 고향에서 ‘지난 잘못을 반성하여 뒷날의 어려움에 대비한다’는 옛 말을 새기며 임진왜란 당시의 기록을 담은 『징비록』을 써내려갔어요.


“이제 상황이 조금 안정이 되어 지난날을 떠올리니 너무나 황송하고 죄스럽기만 하다. 내가 임진년(1592년)부터 무술년(1598년)에 이르기까지 대략 정리하였으니 이것으로 나라에 충성하는 뜻을 표하고 또 어리석은 신하로서 나라에 보답 하지 못한 죄를 드러내고자 한다.”


사실 유성룡은 부끄럽고 창피한 임진왜란의 기록을 정리하면서 여러 번 눈물을 흘렸어요. 전쟁으로 죄 없는 백성들이 목숨을 잃고 어려움을 겪는 것이 슬펐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유성룡은 마음을 추스르며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자세하게 적어갔어요.


“일본군이 한양을 점거한 지 벌써 2년, 전쟁의 화를 입어 천리가 쓸쓸하고 백성들은 농사를 짓지 못해 굶어주는 사람들도 많다. 어느 날 밤 큰 비가 내리는데 굶주린 백성들이 내 주위에서 내뱉는, 신음하는 슬픈 소리를 차마 들을 수 없었다.”

이렇게 생생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급박한 전쟁의 순간에도 중요한 일들을 매일 기록하였기 때문이에요.


유성룡이 이처럼 치열하게 기록을 남겨 둔 데에는 이유가 있었어요. 일본군들에게 당한 것은 분하지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꼼꼼하게 정리해서 이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뜻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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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을 쓰는 유성룡




『징비록』은 임진왜란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생생하게 알려주고 있어요. 더불어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질 않길 바라는 유성룡의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어요.

이 책은 임진왜란이 어떻게 진행되고 펼쳐졌으며, 또 어떤 대비책을 세웠는지 알 수 있는 소중한 기록물이에요. 이로 인해 이미 조선 시대 당시에도 중요한 기록으로 인정받아 많은 사람들과 조정에서 귀하게 보존해왔어요. 오늘날에도 이 책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나라의 보물로 지정되었어요.


유성룡은 높은 벼슬을 했음에도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은 백성들을 생각하며 자그마한 초당을 짓고 그곳에서 청렴하게 살았어요. 1607년 유성룡은 66세에 세상을 떠났어요. 유성룡이 숨을 거뒀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고향뿐만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슬퍼했어요.


부끄럽고 아픈 역사와 마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에요. 하지만 유성룡은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와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그 참상을 기록하고, 또 다시 이런 일을 겪지 않기 위한 대비책을 남겼던 것이에요. 부끄럽고 아픈 역사라도 유성룡처럼 마주대할 때 비로소 역사를 제대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징비록

‘징비’란 지난 일을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뜻이다. 유성룡은 임진왜란을 돌아보고 후에 있을 변란을 대비하기 위해 징비록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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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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