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독립운동을 하러 중국으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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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있는 윤봉길




‘독립운동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옳지! 일제의 감시를 피할 수 있는 중국으로 가야겠다.’


1930년 3월 윤봉길은 자신의 결심을 글로 써서 가족들에게 남기고 중국에 가서 독립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윤봉길은 월진회 회원들의 회비를 빌려 기차를 타고 중국을 향해 떠났어요. 그런데 중국으로 출발한 지 이틀 만에 평안도 선천에서 사복을 입은 경찰에게 체포되었어요. 윤봉길은 그곳에서 한 달 넘게 갇혀 있다가 풀려났어요. 그리고 곧바로 압록강을 건너는 데 성공했어요.


만주에 도착한 윤봉길은 그곳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와 독립군 근거지를 두루 돌아보며 어디서 독립운동을 할지 찾아보았어요. 또 만주에서 살고 있던 교포들의 참담한 생활을 본 뒤 그들을 일깨우는 강연도 했어요. 그 후 윤봉길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있는 상하이에 가기로 했어요.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어요. 준비해온 돈이 다 떨어져 상하이에 바로 갈 수 없었던 거예요. 칭다오로 근거지를 옮긴 윤봉길은 그곳에서 1년간 살았어요. 그곳에서 일본인이 하는 세탁소에 취직했어요. 윤봉길은 성실하게 일하고 돈을 벌어 월진회 회원들이 빌려준 돈도 갚고 상하이에 갈 여비도 마련했어요.


1931년 8월 윤봉길은 드디어 상하이에 도착했어요. 그곳에는 안중근 의사의 친동생이 살고 있었어요. 윤봉길은 그 집에 세 들어 살았어요. 그리고 돈벌이를 위해 인삼 장사를 하기도 했어요.


그 후 윤봉길은 공장에 취직했어요. 그 공장은 말총으로 모자를 만드는 곳이었어요. 윤봉길은 공장에서 일하면서 노동자 친목회를 조직하여 활발히 활동했어요. 또 영어학교에 다니며 영어 공부도 했어요.

윤봉길이 상하이에 와서 자리 잡을 무렵 일본이 중국의 만주를 침략했어요. 만주사변(1931년 9월)이 일어난 것이죠. 만주사변 후 일제는 그곳에 만주국이라는 나라도 세웠어요. 만주국은 일제의 뜻대로 다스리는 꼭두각시 나라였어요.


일제가 만주국을 세운 후 우리 민족이 중국에서 힘차게 독립운동을 펼치는 일은 점점 어려워졌어요. 일부 중국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일본의 첩자로 의심하는 일도 있었거든요. 그러면 독립운동을 하는 데 중국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던 거예요.


만주와 멀리 떨어진 상하이의 형편도 좋은 편이 아니었어요. 이 무렵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이끌던 김구는 새로운 방법으로 일제에 맞설 계획을 세웠어요. 그래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언제라도 목숨을 던질 수 있는 한인 애국단을 만들었어요. 1932년 1월에는 한인 애국단원인 이봉창을 일본의 도쿄로 보내 일왕이 탄 마차에 폭탄을 던지도록 했어요.


이봉창의 의거 소식을 들은 윤봉길은 김구를 찾아갔어요.


“김구 선생님! 저는 지금 공장을 그만두고 이봉창 의사와 같은 독립운동을 하고 싶습니다.”


“윤 군의 뜻을 잘 알겠습니다. 기회가 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봅시다.”

이봉창의 의거가 있고 난 뒤 3개월 남짓 후에 윤봉길에게도 기회가 생겼어요. 1932년 1월 일제가 상하이 사변을 일으켜 상하이를 침략하고 그곳을 차지했거든요. 그리고 4월 29일 일제는 상하이의 한 공원에서 일왕의 생일 축하 겸 자신들이 상하이를 차지한 것을 기념하는 행사를 계획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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