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사업가로 성공한 유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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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14일부터 3일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한인자유대회가 열렸어요. 이 대회는 미국에 있는 동포들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3·1 운동의 소식을 듣고 독립 의지를 보이기 위해 개최한 것이에요.
당시 24세의 대학생이던 유일한은 이 대회에 적극적으로 참가했어요. ‘한국 국민의 목적과 열망을 설명하는 결의문’도 만들어서, 이를 여러 사람 앞에서 낭독했어요. 대회 마지막 날에는 대형 태극기를 들고 시가행진도 했어요. 이때의 경험은 훗날 독립운동을 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지요.
필라델피아 한인자유대회에 참가한 대표들
국사편찬위원회
그 후 대학을 졸업한 유일한은 제너럴 일렉트릭이라는 회사에 회계사로 취직했어요. 이 회사는 미국의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이 만든 회사로 누구나 일하고 싶어 하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었어요. 스스로 회사를 세우고 사업을 하기 위해서였죠.
유일한은 대학 시절 중국인들에게 물건을 팔던 경험을 살려 27세가 되던 1922년 숙주를 판매하는 라초이 회사를 세웠어요. 숙주는 중국인들이 즐겨 먹는 만두에 꼭 필요한 재료여서 미국의 수많은 중국 음식점에 판매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유일한의 예상이 맞아떨어져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어요. 1925년에는 중국 출신인 호미리 여사와 결혼도 했지요. 이제 유일한은 미국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게 되었지요.
1925년 유일한은 숙주나물의 원료인 녹두를 구입하기 위해 중국에 갔다가 일제의 지배를 받고 있던 식민지 조선으로 갔어요. 그곳에서 가난과 여러 가지 질병으로 고통받는 동포들을 봤어요. 그러자 유일한은 잘나가던 미국의 사업을 정리하고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는 고국으로 돌아갈 결심을 했어요. 유일한은 우리나라로 돌아오기 며칠 전 서재필을 만나러 갔어요.
유일한: “서재필 선생님! 며칠 있으면 조선으로 가게 되어 인사 왔습니다.”
서재필: “어려운 결심을 했군요. 부디 조선에 가서 건강하고 뜻한 바를 이루길 바랄게요. 그리고 이것은 내 딸이 만든 버드나무 목각 판화입니다. 선물로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