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펼쳐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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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는 29세에 드디어 과거시험의의 꽃인 대과에까지 장원으로 합격했어요. 이이는 소과인 생원시와 진사시부터 대과에 이르기까지 각종 시험에서 모두 장원을 차지했어요.
“평생 한 번도 합격하기 힘든 과거 시험에 아홉 번이나 장원으로 급제하다니, 과연 구도 장원공일세!”
사람들은 저마다 이이를 칭찬했어요. 구도 장원공은 아홉 번이나 장원한 분이라는 뜻이에요.
이후 관리 생활을 시작한 이이는 출세보다는 오로지 나라와 백성을 위해 일하겠다는 마음으로 지냈어요.
“자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나 오래된 문제점들을 지적하면 오히려 자네가 힘들어질 수 있네.”
“아닐세, 이런 것을 바로잡지 않으면 나라가 온전히 지탱될 수 있겠는가?”
과거에 아홉 번 합격한 이이
이이는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서 임금님께 잘못된 일을 일삼는 신하를 처벌하라는 상소를 올렸어요. 이에 임금이었던 명종은 잘못을 일삼은 신하를 물러나게 하고 이이를 칭찬했어요.
이이는 이후 1568년 중국 명나라로 가는 사신으로 뽑혀 북경에 갔어요. 그곳에서 학문을 통해 나라의 명예를 크게 떨치며 명나라에 깊은 인상을 남기고 돌아왔어요.
“전하, 바른 정치를 펼쳐서 백성들을 두루 살피소서.”
이이는 성리학을 바탕으로 사회개혁을 이뤄가고자 했어요. 이이는 명종에 이어 임금에 오른 선조에게 『동호문답(東湖問答)』을 지어 바치며 백성들이 고통 받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어요.
백성이 도망가면 이웃이 대신 세금을 내야하고 친척이나 이웃이 내지 못하면 동네 사람들이 세금을 내야 한다. 그 피해가 동네로 퍼지다 보니 너도나도 도망을 가 버려 동네에 남아나는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낼 수 있는 세금만 거두도록 하고 세금을 낼 수 없는 백성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이는 이후 선조에게 긴 상소문을 올렸어요. 상소문에는 당시 조선의 현실을 비판하고 조선이 새로운 나라로 거듭나기 위해 필요한 개혁 정책을 제시하였어요. 하지만 당시 이이가 올린 개혁 정책을 조정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이이를 모함하며 괴롭히는 관리들이 목소리를 높였어요, 이이의 개혁 정책이 자신들의 이익과 어긋났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이이는 포기하지 않고 『성학집요』라는 책을 임금에게 지어 바치며 임금이 유교적 정치 이상으로 나라를 바르게 이끌어가기를 바랐어요.
이이는 제자들을 키우는 교육활동에도 힘을 쏟으며 여러 책들을 펼쳐내고 또 생활 속에서 성리학을 실천하는 것에 힘을 다했어요. 벼슬에서 물러나 교육과 사회 활동에 힘쓰던 이이는 49세 되던 해 안타깝게도 과로로 숨을 거두었어요.
뛰어난 재능을 갖고 태어났지만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며 스스로를 경계하며 세웠던 약속을 지켜갔던 이이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많은 가르침을 건네줘요.
이이가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약속을 떠올려보면서 여러분이 지금 스스로에게 할 약속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이이 집안 묘역(경기 파주시)
신사임당과 이이의 묘가 함께 모셔져 있다. 사진 가장 앞이 이이의 부모(이원수와 신사임당) 묘이며, 가장 뒤쪽이 이이와 부인의 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