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호족들이 왕건을 따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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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은 공산전투에서 뛰어난 장수들과 병사들을 잃고 크게 패했어요. 하지만 이 전투를 계기로 오히려 후삼국 통일의 실마리를 얻게 되었어요. 지방의 여러 호족들이 신라 경애왕을 죽인 견훤을 두려워하고, 멀리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많은 호족들이 선물을 보내며 자신들을 인정해 준 왕건에게 스스로 와 복종을 맹세하였어요.
잔인한 견훤보다는 신라를 구원하고자 했던 왕건이 그들 자신의 땅과 지위를 지키는데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에요. 심지어 상주의 호족이었던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마저 왕건을 따를 정도였어요.
929년 견훤이 직접 정예병 5천 명을 이끌고 의성부를 공격해 함락시켰어요. 그리고 왕건의 지지자였던 고을의 성주를 죽였어요. 이 소식을 들은 왕건은 “내가 좌우 손을 잃어버렸다”고 성주의 죽음을 안타까워 했다고 해요. 후백제군은 여세를 몰아 고창(안동)으로 진격하여 성을 에워싸고 거세게 공격하였어요. 고창은 고려가 경상도 지역으로 가기 위한 길목으로 교통의 요충지였어요.
왕건은 위기에 처한 고창을 구원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재빨리 남쪽으로 내려갔어요. 왕건이 고창에 오자 기다렸다는 듯 고창의 호족과 성민들이 왕건을 환영하며 그에게 투항했어요.
고창에서 고려군과 후백제군은 사나흘 동안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전투를 벌였어요. 결국 지방 호족들의 지지를 얻고 싸운 고려군이 후백제군 8천 명을 죽이고 대승을 거두었지요. 견훤은 겨우 살아 도망치기 급급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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