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 시대가 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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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들에게 유언을 남긴 왕은 왕건이에요. 고려를 건국하고 후삼국을 통일한 인물이지요. 왕건의 집안은 후삼국 시대 대표적인 호족이었어요. 신라말부터 지역에 큰 영향을 끼치던 호족이 나타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요?
통일 후 번영을 누리던 신라는 8세기 말부터 진골 귀족들 사이에 왕위 다툼이 일어나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왕위 다툼으로 지방에 대한 신라 조정의 통제력이 약해져 갔고, 가뭄과 전염병으로 백성들의 생활은 더욱 궁핍해졌어요. 게다가 도적의 무리가 전국에 들끓었지요.
혼란한 정국 속에서 지방의 백성들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뭉쳐 방비하면서 신라로부터 독립된 세력으로 성장하였어요. 이처럼 지방에서 성장한 세력을 호족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경주에서 내려온 지방 귀족이나 촌주, 군인, 상인, 농민, 도적 등 그 출신이 매우 다양했어요.
호족으로 성장한 이들은 자신의 근거지에 성을 쌓고 사람들을 모아 군사를 키웠지요. 그리고 스스로 성주 혹은 장군이라 일컬으며 지방을 다스렸어요. 호족 중 대표적인 인물로 견훤과 궁예, 왕건 등을 꼽을 수 있어요. 이들은 신라로부터 독립해 자신만의 나라를 만들어 가고자 하였어요.
농민 출신으로 군인이 되어 서남해안을 지키던 견훤은 892년에는 스스로 왕이라 하였고, 900년에 이르러서는 나라를 세우고 그 이름을 후백제라 했어요. 신라 왕실 출신으로 승려가 되었던 궁예도 901년에는 스스로 왕이라 칭하고, 나라이름을 고려(태조 왕건이 세운 고려와 구분하기 위해 후고구려라 함)라 했어요. 신라, 후백제, 후고구려 이렇게 후삼국 시대가 시작된 것이지요.
후고구려를 세우 궁예는 처음에는 부하들과 고생을 함께 나누며 일을 올바르게 처리해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어요. 백성들은 궁예를 힘든 세상에서 자신들을 구원해 줄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이라 생각했어요.
그러나 궁예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철원으로 도읍을 옮긴 이후 여러 장수와 신하들을 역적으로 몰아 죽이면서 점차 신뢰를 잃어갔어요. 결국 궁예의 부하 장수였던 왕건은 백성들로부터 신뢰를 잃은 궁예를 몰아내고 왕이 되었어요. 그리고 나라 이름을 고려라 하였지요(9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