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당의 근거지가 된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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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때 사림파가 중앙 정계에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서원은 더욱 늘어났어요. 점차 서원은 교육하고 제사 지내는 것을 넘어, 양반들이 모여 국가의 중요한 문제를 의논하는 곳이 되었어요.
이렇게 서원은 조선 후기 붕당 정치의 중심이 되었어요. 서원에서는 스승을 중심으로 학파를 형성하였어요. 같은 학파에서도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서로 다른 세력을 형성했지요.
또 그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세력을 넓히기 위해 서원을 이용했어요. 같은 서원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벼슬길에 나가서도 자기들끼리 무리를 형성하기 일쑤였지요. 각 세력은 자주 의견 대립을 일으켰어요.
최치원과 신잠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무성 서원(전북 정읍시)
문화재청
김굉필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도동 서원(대구 달성군)
문화재청
17세기 이후 붕당 간의 다툼이 심해지고 문벌과 학벌이 점차 강조되자 서원의 수는 엄청나게 늘어났어요. 사림들이 자기 쪽의 인물들을 제사 지내는 서원을 많이 세웠기 때문이에요. 심지어 특정 가문의 위세를 드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서원을 세우기도 했어요.
김인후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필암 서원(전남 장성군)
문화재청
유네스코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사진출처 : 유네스코와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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