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에 사신으로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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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수는 할아버지인 박지원처럼 중국에 다녀왔어요. 다른 점이 있다면 박규수는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의 자격으로 청을 다녀온 것이지요. 그것도 1861년과 1872년 두 차례에 걸쳐서 말이에요.
“할아버지가 다녀오신 청에 가게 되다니...”
1861년 청에 간 것은 아편 전쟁으로 피난을 간 청 황제의 안부를 살피기 위해서였어요. 청은 영국과 프랑스 군대의 공격을 받아 수도인 베이징을 빼앗겼어요. 이때 청 황제는 어쩔 수 없이 여름별궁이 있던 열하로 피난을 갈 수밖에 없었어요. 박규수는 중국에 가서 80여 명의 중국인과 만나며 교류하며 자신의 생각을 키워나갔어요.
1872년에는 청 황제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중국에 갔어요. 그때 중국은 양무운동이 실시되고 있었어요. 양무운동은 서양의 기술과 군사제도를 받아들여 중국을 근대적 국가로 만들자는 것이었어요. 중국의 모습을 살필 수 있었던 박규수는 우리나라도 근대 문물을 하루빨리 받아들여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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