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팔만대장경을 지킨 공군 장교 이야기?
컨텐츠 정보
- 2 조회
-
목록
본문
1951년 6·25 전쟁이 한창이던 어느 날이었어요. 한국 공군 편대장 김영환 대령은 북한군이 몰려 있는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받았어요. 당시 한국 공군은 가야산의 해인사 일대를 중심으로 북한군 소탕을 위해 지상 공격 작전을 펼치고 있었지요.
그런데 김영환 대령은 쉽게 명령을 따를 수 없었어요.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이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고민하던 김 대령은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자신이 이끌고 있던 전투기들에 다른 명령을 내렸어요. 명령 불복종이었어요.
“절대 내 명령 없이는 폭탄과 로켓탄을 사용하지 마라. 대신 해인사 주변의 북한군 무리에 기관총으로 공격하라.”
해인사 폭격을 독촉하는 명령이 또다시 떨어졌어요. 하지만 김영환 대령은 또다시 거부하고 부하들에게 반대의 명령을 내렸어요.
“각 전투기는 일체 공격을 중지하고 내 뒤를 따르라.”
그리고는 김 대령이 이끄는 전투기 편대는 방향을 돌려 다른 곳의 북한군 무리를 폭격하고 기지로 돌아갔지요. 평상시에도 군인이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크게 처벌받지요. 더구나 전쟁 상황에서 명령을 어겼다는 것은 목숨을 내건 일이었지요.
이 소식을 들은 이승만 대통령은 당장 사형을 시키라며 크게 화를 냈어요. 하지만 당시 공군 참모 총장이 김영환 대령의 사정을 대통령에게 전함으로써 김 대령의 사형을 면하게 되었지요.
한편 김영환 대령은 명령 불복종죄로 문책을 받을 때 자신이 명령을 따르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어요.
“태평양 전쟁 때 미군이 일본 교토를 폭격하지 않은 것은 교토가 일본 문화의 상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우리 민족에게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신적 지주인 팔만대장경이 있습니다. 해인사는 세계적 보물인 팔만대장경판이 있는 곳입니다. 그런 곳을 어찌 수백 명의 공비를 소탕하고자 잿더미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공비들은 며칠이 지나면 해인사를 떠날 것입니다. 저는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의 공군 장교입니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서는 폭탄을 투하할 수 없었습니다.”
김영환 대령의 목숨을 건 행동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팔만대장경판과 장경판전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마터면 세계유산이자 우리 민족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불 속에서 그만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했지요. 이런 분들의 용감한 행동으로 찬란한 우리 역사가 이어져 내려오고 민족의 힘이 되고 있는 것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