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 보상 운동이 대구에서 시작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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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문사는 동서양서적을 번역하고, 경상북도 지역 의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잡지를 펴내려고 만든 출판사예요. 문화를 통해 국민들의 힘을 기르려 한 광문사는 당시 대한매일신보 대구 지사의 역할도 담당했어요.
국채 보상 운동은 1907년 1월 29일 대구광문사회 이름을 대동광문회로 바꾸기 위한 회의에서 시작되었어요. 국채 보상 운동을 제안한 서상돈이 먼저 8백 원을 내놓았고, 회원들도 의연금을 내놓아 2천여 원이 모였어요. 국채보상의 가능성을 확인한 대동광문회는 이 운동을 전국으로 퍼트리기 위해 ‘국채 보상 운동 취지서’를 써서 발표하였어요.
국채 보상 운동이 시작된 광문사터
취지서에는 국민들이 충과 의를 지키면 나라가 살고, 그렇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을 강조했어요. 영국에 빚을 졌다가 나라를 잃은 이집트를 비롯해 베트남, 폴란드의 사례도 들었지요. 그리고 국민들이 단결하여 담배를 끊고, 그 돈을 모아 국채를 갚아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자는 뜻을 담았어요.
『대한매일신보』 1907년 2월 27일자 국채보상기성회 취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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