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욕의 역사를 기억하게 하는 삼전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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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때 청은 점점 더 많은 군사들을 동원하며 남한산성에 있는 조선 사람들을 압박했어요. 사실상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고립된 상황이었어요.
청 태종은 조선의 임금이 신하의 예를 갖추고 항복할 것을 요구했어요. 이때 김상헌 등은 청군에 끝까지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반면 최명길 등은 현실을 받아들여 청의 요구대로 화해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결국 인조는 청에 항복하기로 결정했어요. 인조는 매서운 바람이 부는 날, 청의 군대가 있는 한강 삼전도(삼전나루, 지금의 잠실 석촌호수 지역)로 나갔어요. 그리고 높이 쌓은 단 위에 의기양양 앉아있는 청 황제를 향해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고개를 땅에 조아리며 항복의 뜻을 전했어요. 이후 청을 임금의 나라로 섬기기로 했고요. 참으로 굴욕적인 항복이었지요.
청 황제는 병자호란 승리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삼전도비를 세웠어요. 이 비석은 ‘청황제공덕비’라고도 불러요. 몽골어, 만주어, 한자로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요. 조선은 청에 항복한 이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비롯해서 끝까지 싸우자고 주장했던 신하들을 청에 인질로 보내야했답니다.
삼전도비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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