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의 압박에 시달리고, 개경 궁궐이 불타다
컨텐츠 정보
- 3 조회
-
목록
본문
묘청은 서경(평양) 출신의 승려에요. 그가 살았던 시기 고려는 안팎으로 몹시 혼란스러웠어요. 안으로 권력을 장악한 문벌 귀족들이 왕권을 위협했지요. 밖으로는 요를 멸망시키고 송을 남으로 밀어낸 금이 세력을 떨치기 시작했고요.
강력해진 금은 자신들을 황제로 섬기고 신하의 예를 갖추라고 압력을 가했어요. 이 문제를 놓고 신하들 간에 의견이 나뉘었지요.
“폐하, 절대로 안 될 일입니다. 오랑캐인 여진이 세운 금나라를 어찌 섬길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사옵니다. 이전에 금은 작은 나라여서 고려와 요를 섬겼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요를 멸망시키고, 세력이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옵니다.”
최고의 권력자였던 이자겸은 금나라를 섬기자고 했어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면 금과 어긋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에서였지요. 이자겸은 인종의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이에요. 그는 권력을 독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딸들을 두 대에 걸쳐 왕들과 혼인시켰어요. 인종도 이모와 혼인했지요.
인종은 엄청난 권력을 휘두르는 이자겸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만 없어 제거하려 했어요. 그러자 이자겸이 난을 일으켰어요(1126년). 궁궐을 불태우고 왕을 가두기도 했어요. 왕은 이자겸 세력의 내분을 이용해 가까스로 난을 진압했지요.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