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별초의 대몽 항쟁이 이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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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정부가 개경으로 돌아간다고 결정하자 최씨 무신 정권의 사병이었던 삼별초가 이를 거부하며 봉기했어요. 배중손이 지휘한 삼별초는 몽골에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하며 배를 타고 진도로 갔지요.
그러나 몽골·고려 연합군의 공격으로 진도를 빼앗기자 삼별초의 일부 세력은 김통정의 지휘 아래 제주도로 옮겨 가서 항쟁을 이어나갔어요. 결국 삼별초가 1273년 몽골·고려 연합군에 패하면서 3년여에 걸친 대몽 항쟁은 막을 내렸어요.
삼별초의 봉기는 대몽 항쟁을 이어나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요. 더욱이 백성들이 적극적으로 가담하면서 삼별초의 봉기가 3년이나 이어질 수 있었지요. 그러나 삼별초는 최씨 무신 정권의 사병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는 한계도 있어요.
우리는 고려의 대몽 항쟁과 삼별초의 항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당시 몽골군의 군사력은 세계 최강이었는데, 그처럼 강력한 몽골군에 맞서 고려는 40년 가까이 맞서 싸웠어요. 그 덕분에 고려는 비록 강화를 맺고 한동안 원의 간섭을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라와 왕실은 물론 고유의 풍속을 유지할 수 있었지요.
삼별초의 봉기는 대몽 항쟁으로서의 성격과 자신들의 세력 유지라는 두 가지 성격을 모두 갖고 있었어요. 더욱 중요한 점은 당시 몽골과의 전투에서 앞장서서 싸운 주역이 지배층이 아니라 일반 백성이었다는 것이에요. 내 가족, 내 마을을 지키기 위한 백성들의 피땀 어린 항쟁을 우리는 그 어떤 높은 지위의 장군보다 높이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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