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적

망이·망소이가 들고 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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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중기 무신들이 권력을 잡은 뒤, 마음대로 권력을 휘둘렀고 갖가지 세금을 거두어들였어요. 백성들은 세금 내랴, 공사에 불려나가랴 고달프게 살아갔지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농민들과 특수 행정 구역에 모여 살던 무리들이 들고 일어났지요. 노비들도 봉기를 계획했고요.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백성들의 몸부림에 고려 사회는 혼란스러웠어요.


먼저 눈여겨 볼 사람들이 망이와 망소이 형제에요. 그들은 무신들이 권력을 잡은 지 6년이 지난 1176년, 공주 명학소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들고 일어났어요.


‘소’는 고려의 특수한 행정 구역이에요. 종이, 숯, 먹 등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어 나라에 바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지요. 이곳 사람들은 양인 신분이었지만, 일반 행정 구역인 군현에 살던 양인들에 비해 차별 대우를 받았어요. 마치 천인과 같은 취급을 받았지요. 소에는 수령도 보내지 않았고요.


공주 명학소는 숯을 만들던 수공업자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어요. 이곳 사람들은 일반 양인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면서도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했죠. 울분이 쌓이고 쌓인 그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어요.

드디어 망이·망소이 형제는 자신들과 뜻을 함께 할 수 있는 무리를 모아 들고 일어났는데, 그 세력이 만만치 않았어요.

공주 관아를 점령한 봉기군


봉기군은 순식간에 공주 관아를 점령해 버렸어요. 깜짝 놀란 조정에서는 관리들을 보내 그들을 달래려고 했어요. 봉기군의 기세는 나날이 세져 막을 수 없었지요. 그들을 토벌하기 위해 온 3천 여 명의 군대도 보란 듯이 무찔러 버렸어요.

얼마 후 봉기군은 조정에 강화를 요청했고, 조정에서는 그들과 협상을 벌였어요. 명학소를 일반 양인들이 사는 ‘충순현’으로 높여주고, 수령을 보내 백성들을 보살피게 했지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망이·망소이 무리가 다시 들고 일어났어요. 조정에서 겉으로는 그들을 달래는 척하다 토벌하려 했거든요. 봉기군은 이번에는 덕산 가야사를 약탈한 뒤, 홍경원이라는 절에 들어가 불을 지르고 스님들을 죽이기도 했어요. 지배층과 손잡고 땅을 넓히고, 많은 노비를 거느린 절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었죠.


망이와 망소이는 홍경원의 주지 스님에게 편지를 써주며 정권을 잡고 있던 정중부에게 알리도록 했어요.


“우리 고향을 현으로 높여주고 수령을 보내 백성을 보살피게 하더니, 다시 군사를 보내 우리를 토벌하려 하고, 어머니와 처까지 잡아들이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이오? 싸우다 죽을망정 절대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개경으로 가 우리의 뜻을 이룰 것이다.”


그들의 기세는 여전히 하늘을 찌를 듯 했어요. 그러나 망이·망소이 무리와 손잡았던 세력들이 나라에서 보낸 군대에게 하나 둘 패하면서 상황은 점점 불리해졌어요. 밀려오는 군대를 막아낼 수 없었던 봉기군은 1년 반 만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어요. 망이와 망소이는 감옥에 갇힌 뒤 죽었다고 전해요.

망이·망소이의 봉기는 실패로만 끝난 걸까요? 그렇지 않아요. 그들의 봉기는 이후 하층민들의 봉기에 영향을 주었어요. 조정에서도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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