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직접 6조의 보고를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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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의정부는 나라의 중요한 일을 의논하는 기관이에요.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비롯한 재상들이 모여 나랏일을 합의하던 최고 의결 기관이었죠. 행정을 나누어 맡아보던 6조에서 의정부에 나랏일을 보고하면 영의정 등의 재상들이 논의해서 결론을 냈어요. 마지막에 그 내용을 국왕에게 보고하면, 국왕이 최종 결정을 했지요.
이후 결정된 내용은 각기 6조에서 집행했어요. 6조는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 등을 말하는데, 각기 다른 행정 업무를 맡아봤어요. 각 부서의 우두머리는 판서라고 불렀지요. 지금의 행정 각 부 장관들과 비슷해요.
그런데 태종은 6조에서 의정부를 거치지 않고 보고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어요. 직접 6조의 장관들에게 보고를 받게 되면서 국왕의 권력은 더욱 강력해졌죠. 대신 6조의 권한도 조금 높여주었어요.
하지만 이후 조선의 왕들은 태종처럼 6조에서 보고받아서 업무를 직접 처리하는 것보다 재상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방식을 선호했어요. 국왕과 재상이 서로 논의하면서 정치를 하는 것이 더 좋은 방식이라고 여겼던 거지요.
6조 직계제
태종은 이외에도 청계천의 물이 잘 흐르도록 바닥을 파서 비 피해를 막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들이 신문고를 울려 억울함을 풀 수 있도록 했어요. 또 교육 제도를 정비해 성균관에 인재들이 모여 교육을 받도록 했어요.
호패법을 실시한 것도 나라를 안정적으로 다스리기 위한 정책이었어요. 세금을 내야 하는 사람, 군대에 가야 하는 사람들을 정확히 알기 위해 호패법을 시행한 거죠. 호패는 16세 이상의 남자들이 차고 다녔는데, 사는 곳, 신분, 이름 등이 적혀 있었어요.
태종은 조선의 기틀을 튼튼하게 다졌어요. 그는 셋째 아들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에도 정치에 관여했어요. 세종의 외척까지 제거하며 왕이 나랏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었지요. 효자 세종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훌륭한 정치를 해나갔어요. 세종의 시대에 국가는 문화적 발전을 이루며 태평성대를 누리게 되었답니다.
태종 이방원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형제들을 죽인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고 비판받기도 하지만, 조선의 기틀을 탄탄하게 다진 능력 있는 왕으로 평가받기도 해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