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율

화약무기가 큰 활약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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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은 올려다보고 공격하는 상황이라 탄환도 잘 맞지 않았어요. 그러나 권율과 함께 호남 지역에서 올라온 군사들은 모두 활을 잘 쏘았어요. 군사들이 활을 쏘는 대로 일본군을 적중시켰지요. 화살이 마치 비 오듯 쏟아지니 목책을 넘으려던 일본군의 기세가 번번이 꺾이곤 하였어요.


일본군의 조총에 맞서 화살은 물론 여러 화약 무기들도 큰 활약을 하였어요. 가장 많은 활약을 한 것은 화차였어요. 화차에는 화약을 이용하여 동시에 수 백발의 화살을 쏘는 신기전과 쇠구슬을 발사하는 총통기가 있었어요. 한꺼번에 많은 화살과 쇠구슬을 날려 먼 거리에서 몰려오는 일본군에게 큰 피해를 주었지요.


비격진천뢰는 대완구로 발사하며 400m 정도를 날아가 터지는 일종의 시한폭탄이었지요. 폭탄 내부에는 화약과 철조각이 들어있었어요. 발사한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내부의 화약이 터져 파편이 사방으로 날아가 많은 일본군에게 큰 피해를 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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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대첩에서 사용한 화약무기




일본군이 짚단을 가지고 와 목책에 쌓아 불을 지르자 성 안의 백성들이 물을 길어와 불을 껐어요. 왜적이 서북쪽 목책 한 칸을 허물고 고함을 치면서 들어오자 그곳을 지키고 있던 승군이 조금 밀려났어요. 그러자 권율이 직접 칼을 빼어 도망가려는 자를 베고 군사들과 함께 직접 칼과 창을 휘두르며 전투를 벌여 물리쳤어요.


일본군의 계속된 공격에 성 안의 화살이 거의 떨어지자 병사들은 돌을 던져가며 방어를 하였어요. 백성들도 병사들을 도와 전투에 참가하였어요. 성 안에 무기와 병사가 부족한 상황을 눈치 챈 일본군이 기세를 올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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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대첩(전쟁기념관)




왜적은 결국 후퇴하면서 시체를 네 무더기로 쌓아 놓고 풀로 덮어 태웠는데, 당시 시체 타는 냄새가 10리 까지 뻗쳤다고 해요.

이 전투에서 조선군의 사상자는 많지 않았던 반면 일본군은 부상자만 5천 명에 이르렀어요. 행주대첩은 조선군의 큰 승리였어요. 당시 벽제관 전투에서 명군이 일본군에게 패해 사기가 크게 떨어졌었는데, 행주대첩으로 다시 전세가 역전되어 조선에 유리하게 펼쳐졌어요. 행주산성에서의 승리를 계기로 일본군은 경상도 바닷가 지역으로 후퇴하였고, 조선은 한양을 되찾을 수 있었어요.


행주산성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군사들과 백성들이 일본군에 맞서 싸웠어요. 행주산성에서 승리하고 한양을 되찾은 권율과 백성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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