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율

일본군, 평양을 버리고 한양으로 후퇴하다

컨텐츠 정보

본문

1592년 4월13일, 부산포에 첫 발을 내디딘 일본군은 이틀 만에 동래성을 점령하였어요. 그리고 파죽지세로 북상하여 불과 20일 만에 한양을 점령하고, 6월에는 평양과 함경도까지 진출했어요. 임금은 명과 가까운 의주로 피신을 갔지요.


그러나 왜군은 더 이상 진격할 수 없었어요. 가장 중요한 식량과 군수물자가 더 이상 원활하게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남해를 돌아 서해로 진출해 물자를 보급하고자 했던 일본 수군은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에게 막혀 꼼짝도 못하고 있었고, 육지에서는 의병들의 유격전술에 물자를 보급하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3235224eb038b74358a84e9961ee488c_1746674672_1535.JPG
임진왜란 초기 일본군의 이동 경로와 격전지




그러자 한양을 점령하고 있던 일본군의 일부는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곡창 지대인 호남 지역을 차지하려 하였어요. 그러나 전라도 관찰사 권율을 비롯해 의병장 고경명, 조헌 등과의 금산 일대에서의 전투로 가로막혀 실패하고 말았지요. 남해안을 따라 이동하던 일본군도 진주성 전투에서 김시민에게 패해 호남 지역을 차지하려던 계획도 결국 성공하지 못했어요.


일본군에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명군이 참전하여 조선군과 함께 싸웠어요. 조·명 연합군은 먼저 평양성을 공격하여 되찾았고, 평양에서 밀려난 일본군은 한양까지 도망쳐 성에 의지해 버티고 있었어요.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4 / 1 페이지
RSS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