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옥

교관으로 활동하고, 한국애국부인회회에 참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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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1937년 중일 전쟁을 일으키고 중국을 공격하자 그녀는 남편과 함께 충칭으로 옮겨갔어요. 충칭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 마지막 청사가 있던 곳이지요. 그곳에서 중국 국민당 정부의 육군참모학교 교관으로 활동하였어요. 영어와 일어를 가르치고 일본인을 구별하는 방법도 가르쳤다고 해요. 비행사로서 독립 투쟁을 벌일 수는 없었지만, 이런 활동 모두 우리의 독립을 위한 것이었지요.


1943년에는 다시 만들어진 한국애국부인회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그녀는 사교부장을 맡아 여러 갈래로 나뉜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하나로 모으고 독립의식을 높이는 데 기여했어요. 또 한국광복군 비행대를 만들 구상도 했어요. 미국 군대와 협력해 일본에 맞서 직접 전투에 참여할 계획도 세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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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애국부인회 사람들(권기옥은 오른쪽 두 번째)

숭의여자고등학교




그러던 중 1945년 8월 우리 민족은 광복을 맞이했어요. 그녀는 2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어요. 이후 국회 국방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약하며 공군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어요. 또한 출판사 사장을 하면서 책을 출판하기도 했어요. 나이가 들어서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배움을 포기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기도 했어요.

권기옥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순종을 강요받던 시대에 비행사를 꿈꾼 깨어있는 여성이었어요. 대부분 남성들이 조종하던 군용 비행기를 조종한 최초 한국인 여성 비행사로 차별과 편견의 벽을 허물어뜨렸지요. 또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쳤어요. 그 공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기도 했어요.


그녀는 자신의 꿈을 온전히 이루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늘 독립을 위해 하늘을 나는 꿈을 꾸며 살았기에 늘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하지 않았을까요? 권기옥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녀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너희도 나처럼 큰 꿈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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