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난항공학교에 입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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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로 건너간 권기옥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주요 인물들을 만났어요. 비행사 양성의 필요성을 알고 있던 노백린과 안창호를 만나면서 그녀의 꿈은 더욱 확실해졌어요. 비행기에 폭탄을 싣고 가 일왕이 살고 있는 궁에 폭탄을 던지는 꿈 말이에요. 그래서 항공학교에 입학하기로 결심했어요.
안창호는 독립운동에 비행기가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고 생각했어요. 중국 대륙을 가로질러 비행하며 중요한 정보를 전할 수 있을 테니까요. 또 한국인 비행사가 하늘을 나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독립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하리라는 확신이 있었지요. 훗날 임시 정부에서 공군을 조직해 그녀를 공군 비행사로 쓸 큰 꿈도 꾸었어요.
하지만 권기옥이 중국에 있는 항공학교에 입학하는 일은 쉽지만은 않았어요. 두 곳에서는 여자라는 이유로 거절당했어요. 입학 허가를 얻어낸 곳에는 비행기가 없어 제대로 훈련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그녀가 선택한 곳은 중국 서남단 윈난성 쿤밍에 있는 윈난항공학교였어요. 그녀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써준 추천서를 가슴에 품고 중국 대륙을 가로질러 윈난성의 쿤밍시에 도착해 직접 학교를 방문했어요.
권기옥의 이동 경로
“저는 비행사가 되어 조선 총독부 건물을 폭파하고 일본 도쿄에 있는 일왕의 궁성에 폭탄을 투척하고 싶습니다.”
권기옥의 당당하고 결의에 찬 태도에 운남성의 군사령관인 탕지야오는 흔쾌히 입학을 허락했어요. 이렇게 그녀는 윈난항공학교의 학생이 되었어요.
하늘을 찌를 듯한 권기옥의 의지와 단단한 마음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지요. 온 힘을 다해 공부하고 훈련을 받았어요. 비행기 공부는 물론 조종하는 방법과 체력을 기르는 다양한 훈련도 받았지요. 대략 9시간 비행 훈련을 마친 뒤 혼자서 단독 비행까지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단독 비행을 하는 권기옥
항공학교에 권기옥이 있다는 소식이 일본에 전해지자, 일본 경찰은 그녀를 검거하려 눈에 불을 켰어요. 심지어 사람을 보내 암살을 하려고도 했어요. 길거리에서 그녀를 발견하면 무조건 죽이라고까지 했어요. 그녀는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새벽에 비행 훈련을 해야 했고, 학교 밖으로는 나갈 수도 없었어요.
1925년 2월 드디어 권기옥은 윈난항공학교 제1기 졸업생이 되었어요. 첫 한국인 여성 비행사가 된 것이지요. 하지만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공군이 되지는 못했어요. 당시 임시 정부는 공군을 조직할 만큼 자금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어쩔 수 없이 그녀는 중국군의 비행사가 되었어요.
그즈음 권기옥은 독립운동가인 이상정과 결혼하고 함께 중국 국민당 공군으로 활동하며 일본에 맞섰어요. 김원봉이 중심이 된 의열단과도 교류하며 다양한 독립운동의 방법을 찾기도 했어요.
윈난항공학교 졸업장
숭의여자고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