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유적

낙동강 방어선 최대 전투지 다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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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을 지키는 군인과 전투 후 파괴된 북한 탱크

국가기록원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다. 물러나면 바다뿐이다.”

빠른 속도로 내려오는 북한군을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에 의지해 막아섰어요. 낙동강 방어선에서 가장 중요한 길목은 다부동이었어요. 다부동 지역을 빼앗기면 대구를 지키기가 어려운 상황이었거든요.

때문에 다부동에서의 전투는 매우 처참했어요. 산을 오르며 총을 쏘고, 참호에 수류탄을 던지고, 직접 몸으로 적과 부딪쳐 싸우는 백병전도 자주 벌어졌어요. 비 오는 날이나 어두운 밤에는 백병전이 더 심했어요. 고지 하나를 낮에는 국군이 빼앗고, 밤에는 다시 북한군에게 빼앗기기를 15번이나 반복한 곳까지 있을 정도였어요.


전투가 치열해질수록 죽거나 부상을 입는 군인의 수도 늘어갔어요. 사상자를 대신해 매일 600~700여 명의 신병을 보충해야만 했어요. 나중에는 신병도 모자라 학도병으로 대신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55일간 계속된 다부동 전투에서 양측 모두 합쳐 2만 7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전투는 겨우 끝이 났어요.


국군과 유엔군은 많은 희생자를 냈지만 다부동 지역을 비롯한 낙동강 방어선을 지킬 수 있었어요. 낙동강을 지키는 사이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면서 다시 반격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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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부동전적기념관(경북 칠곡군)

칠곡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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