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디아스포라(이주)의 역사

일본으로 이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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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20세기 초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의 다수는 유학생이었어요. 그러나 1910년 일제에 의해 국권을 빼앗긴 뒤에는 생활 기반을 잃은 농민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일제는 임금이 낮은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본 이주를 허용하였어요. 이주는 점차 증가하였지요.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인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으며 힘든 일을 했고, 일본인들로부터 심한 차별을 받았어요.

그러던 중 1923년에는 일본 간토(관동) 지역에서 진도 7.9의 지진이 발생했어요. 많은 사람이 죽고 재산 피해가 컸지요. 경찰력이 기능하지 못할 정도로 사회가 흉흉했어요. 그러자 일부 일본인들은 유언비어를 만들어 퍼뜨리기 시작했어요.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일본인을 죽이고 있다.”


“조선인들이 우물 안에 독약을 넣었다.”


일본에서 벌어진 사회 불안의 원인을 그곳의 힘 없는 조선인 탓으로 돌렸던 거지요. 이런 유언비어에 흥분한 일부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기 시작했어요. 이로 인해 적어도 6천여 명의 동포가 일본인에게 학살당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어요.


1930년대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본 이주는 계속되었어요. 특히 중일 전쟁, 태평양 전쟁 등으로 국제 정세가 혼란해지는 가운데 일본 내의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일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강제 동원하여 광산이나 공장의 노동자로 일하게 했어요.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사람들은 열악한 조건에서 노동하면서 제대로 임금도 받지 못했지요. 그뿐만 아니라 식민지에서 왔다는 이유로 심한 차별을 받았어요.

1945년 광복 이후 일본에 살던 이들 중 일부는 고국으로 돌아왔어요. 당시 일본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귀국한 사람은 1950년까지 약 100만 명이 넘었대요. 그러나 실제로는 귀국자가 더 많았을 것으로 추측해요.


한편 60여만 명은 일본에 남았어요. 이들은 일본에 뿌리내리며 재일동포(자이니치) 사회를 형성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현재 그 후손들이 재일동포 4세 혹은 5세로 이어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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