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주인공 사도세자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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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첫 번째 아들인 효장세자가 열 살의 나이로 죽고, 7년 만에 아들을 얻었으니 그가 사도세자예요.
“이 아이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내가 힘써온 탕평을 잇는 뛰어난 임금이 될 거야.”
영조는 어린 사도세자 세자를 많이 사랑하고 아꼈어요, 기대 또한 컸어요. 하지만 세자는 커 갈수록 공부보다는 무예 등을 더 좋아하였어요. 영조는 그런 사도세자를 못마땅해 하였어요. 치열한 붕당의 싸움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세자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똑똑해야 져야 된다고 생각하였지요.
어느 날 영조는 자신을 대신해 사도세자에게 나랏일을 맡겼어요. 사도세자는 노론의 뜻과 상관없이 정치를 하였어요. 노론은 자신의 편을 들지 않는 사도세자를 싫어했지요. 노론은 사도세자에 대해 나쁜 소문을 퍼뜨리고 이간질하였어요.
영조는 세자를 불러 크게 꾸짖었어요. 그리고 엄격하게 대하였어요. 사도세자는 그런 영조를 더 두려워하게 되었어요.
결국 세자는 너무 힘들어 더 삐뚤게 행동하였어요. 심지어 사람을 함부로 죽이기까지 하였어요. 틈을 노리고 있던 노론은 세자의 잘못들을 적어 영조에게 일러바쳤어요. 영조는 몹시 화났어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어요. 속상하고 힘들지만 나라의 앞날을 위해 결정해야만 하였어요.
“세자는 관을 벗고 이 칼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라.”
“아바마마!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네가 끝내 자결하지 못하는구나. 여봐라! 세자를 뒤주에 가두어라. 앞으로 세자에게 물 한 모금도 주지 말라!”
뒤주에 사도세자를 가둔 영조
세손까지 와서 애원하였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결국 살려달라 울부짖던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갈증과 굶주림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어요.
영조는 탕평책을 강하게 펼치며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고자 하였어요. 그 결과 영조 대는 나라가 발전되고 풍요로워졌지요. 하지만 영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붕당 정치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였어요. 심지어 붕당 싸움에 휘말려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갇혀 죽게 만들었지요.
아무리 정치 상황이 복잡하고 힘들어도 사도세자를 꼭 그렇게 죽일 수밖에 없었을까요? 만약 영조의 탕평책이 제대로 펼쳐졌다면 이후 조선 사회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