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성에서 또 한 번 몽골군을 물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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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인성 전투 이후에도 몽골군은 그 기세가 꺾이지 않았어요. 더욱 막강한 군사를 이끌고 고려에 수차례 쳐들어 왔어요. 그때마다 몽골군이 지나간 자리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어요.
수많은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고, 어린 아이들마저 포로로 끌려갔어요. 그러는 사이 국토는 엉망이 되었고, 황룡사 9층 목탑 등 많은 문화재들도 불탔어요.
그런데도 임금과 귀족들은 강화도에서 바다를 통해 들어온 갖가지 진귀한 음식을 먹으며 풍요롭게 살았지요. 때마다 잔치를 벌이기도 했고요. 이런 점을 보면 도읍을 옮긴 것이 몽골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는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한 것이었는지 의문이 들어요.
몽골군의 5차 침입로
1253년, 몽골은 다섯 번째로 고려에 쳐들어 왔어요. 처인성 전투를 치룬지 21년이 지난 때였지요. 그동안 몽골군은 다양한 신무기로 무장해 더욱 강해졌어요. 서경을 지나 철원, 춘천을 거쳐 단숨에 충주까지 밀고 내려왔어요. 만약 충주가 무너지면 경상도 지역이 위험한 상황이었지요.
충주성에 모인 군사들과 백성들은 70여 일 동안 전투를 치루며 지칠 대로 지쳐있었어요. 식량도 먹을 물도 다 떨어져 가고 있었지요. 이때 지친 마음을 일으켜 세운 사람이 있어요. 바로 김윤후이지요.
“마음을 다해 힘써 싸워 이깁시다. 그리하면 신분이 귀하던 천하던 가리지 않고 공에 따라 벼슬을 내리도록 할 것입니다!”
“장군님, 정말이십니까?”
“당연하오. 저기 모아 놓은 노비 문서를 당장 불사르시오.”
“와, 장군님 만세! 몽골군을 몰아내고 충주성을 지킵시다.”
노비문서를 불태우는 김윤후
충주성에 모인 사람들은 김윤후의 지휘 아래 있는 힘을 다해 싸웠어요. 전투 중에 얻은 가축이나 물건들도 골고루 나누어 주니 사기가 더욱 높아졌지요. 충주성 군사들과 백성들의 저항에 깜짝 놀란 몽골은 더 이상 공격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다 지휘관인 예쿠가 병에 걸려 물러갈 수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몽골의 침입은 그 뒤로도 계속되었어요. 고려 조정은 점점 고민이 깊어졌어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거든요. 결국 고려는 몽골에 무릎 꿇고, 1270년 개경으로 다시 도읍을 옮겼어요.
고려는 비록 항복했지만, 40여 년 간 몽골에 맞서 싸운 백성들의 끈질긴 저항은 역사 속에서 오래도록 기억되고 있지요. 무엇보다 정식 군대도 아닌 처인성과 충주성 주민들의 힘으로 일궈낸 값진 승리이기에 더 큰 의미가 있어요.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고려가 두 번이나 몽골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나라를 지키려는 백성들의 하나 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백성들의 마음을 잘 읽어 낸 김윤후의 지도력도 빼놓을 수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