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자고 생각하다
컨텐츠 정보
- 27 조회
-
목록
본문
김정희는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실학자 박제가로부터 본격적으로 학문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배움의 길은 끝이 없느니라. 장차 어떤 길을 가야할지 뚜렷한 목표를 세워놓고 학문을 익혀야 한다.”
“예. 알겠습니다. 스승님.”
“북학은 실제 삶에 활용되는 실학의 하나로, 청의 발달한 문물을 받아들여 우리나라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학문이다. 앞으로 너는 이를 널리 공부해야 할 것이야.”
당시 청나라는 학문과 문화가 크게 발달했는데, 청에 다녀온 경험이 있던 박제가는 조선도 청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 나라를 더욱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러한 그의 생각은 제자 김정희에게 전해졌고, 김정희의 학문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어요.
학문에 열중하던 김정희에게 시련이 다가왔어요. 열여섯 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스무 살에 아내마저 세상을 떠났어요. 그뿐만 아니라 박제가마저 귀양을 떠나는 바람에 스승과 이별을 하게 되었어요. 연이은 불행에도 불구하고 김정희는 계속 학문 연구에 힘썼고, 그 결과 1809년 스물네 살에 과거 시험에 합격했어요.
얼마 후 김정희는 청으로 가는 사신 일행인 아버지를 따라 청의 수도 연경(지금의 베이징)으로 가게 되었어요. 김정희의 아버지가 말했어요.
“청은 현재 우리 조선보다 훨씬 발달한 나라이다. 이번 기회에 많은 것을 배우도록 하여라.”
“알겠습니다. 아버님! 스승님의 뜻을 받들어 청의 발달한 문화를 받아들여 조선을 더 잘사는 나라로 만드는 데 힘을 보태겠습니다.”
글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김정희와 청의 대학자 옹방강
김정희는 4개월 정도 청에 머물면서 당시 청의 최고 학자들과 친분을 쌓고, 학문과 예술에 대해 활발하게 토론했어요. 특히 당시 77세의 대학자 옹방강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귀한 책과 그림을 모두 보여주고 그 속에 담긴 내용을 친절히 설명해줄 정도로 김정희를 귀히 여겼어요. 조선으로 돌아온 뒤에도 김정희는 옹방강이 죽기 전까지 편지를 주고받으며 학문적인 교류를 이어나갔어요.
이처럼 청의 학자들과 책과 그림, 편지로 연락하면서 김정희는 조선의 뛰어난 학자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어요.
한편 김정희는 청에 머물 때 뛰어난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고 있던 고증학을 배웠어요. 고증학은 과거의 여러 자료를 꼼꼼히 살펴 유교 경전의 뜻을 더욱 정밀하게 해석한다거나 역사적 사실을 좀 더 확실하게 밝히는 학문을 뜻해요. 이러한 고증학을 배운 김정희는 학문의 깊이가 더욱 깊어졌지요. 김정희는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비석, 도자기, 철기 등에 새겨진 글자를 연구하는 학문도 관심을 두게 되었어요.
조선으로 돌아온 김정희는 이론만 내세우는 학문보다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는 학문 연구에 뜻을 두고 청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이자는 북학 연구에 더욱 힘을 쏟았어요. 또한 청에서 배운 고증학을 바탕으로 옛 비석에 새겨진 글자들을 연구하기 시작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