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버려 신앙을 지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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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은 관군에게 붙잡혀 황해도 해주 관아로 끌려갔어요. 이미 그가 중국 배에서 전한 편지와 지도도 빼앗긴 뒤였어요. 그는 다시 한양으로 보내어졌어요. 그리고 포도청에서 문초를 받게 되었어요.
고문을 받는 김대건
“너의 종교를 버려라!”
김대건은 형틀에 꽁꽁 묶인 채 심한 고문을 받았어요. 몸은 비록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그는 망설임 없이 담담하게 대답하였어요.
“내 목숨은 빼앗을 수 있어도 내 신앙은 빼앗을 수 없다!”
“참으로 어리석은 놈이로구나. 천주교를 믿지 않겠다고 말만 하면 지금 당장 풀어 줄 수도 있는데.”
김대건을 심문하던 관리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어요. 계속되는 가혹한 고문에 김대건은 정신을 잃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썼어요. 정신을 잃으면 아무 말이나 할지 모를 일이었지요. 김대건은 고문에 지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였지만, 고통을 참고 이를 악물며 다시 힘주어 말했어요.
“사람이 한 번 나면 죽음을 면치 못하는 법. 천주를 위해 죽는 것이 나의 소원이니, 오늘 묻고 내일 물어도 같을 뿐이다.”
김대건은 수십 차례의 고문을 받고 결국 사형 선고를 받았어요. 1846년 9월 16일 날이 밝아 왔어요. 김대건은 한강 변에 있던 새남터 형장으로 끌려갔어요.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쳤어요. 그때 그의 나이 25세, 천주교 신부로 활동한 지 불과 1년 남짓한 기간이 지났을 뿐이었어요.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은 이렇게 순교하였어요. 조선 정부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천주교는 김대건과 같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이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어요.
그 후 1984년, 김대건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우리나라 성인으로 추대되었어요. 만약 여러분이 김대건이라면 자신의 신념을 위해 이처럼 목숨까지 버릴 수 있을까요?
김대건 동상
천주교 박해의 상징인 서울 마포구 절두산 성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