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를 완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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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은 관직에서 물러난 김부식에게 명령을 내렸어요.
“역사책을 만들어주시오. 그대를 도울 젊은 학자들을 보내 주겠소.”
인종은 고려의 학자들이 유교 경전과 중국 역사는 잘 알고 있으나,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삼국의 역사가 중국 책에 기록되어 있지만 대강만 기록되어 있고, 자세하지도 않소. 우리 옛 기록들은 내용도 빈약하고 표현도 좋지 않소. 무엇보다 왕과 신하, 백성의 잘잘못을 가릴 수 있는 규범은 어디에도 없소. 규범을 기록해 후세에 교훈이 될 수 있도록 하시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역사책 편찬이라는 큰일을 맡게 된 김부식은 무척 기뻤어요. 3년여 동안 능력 있는 젊은 학자들과 함께 『삼국사기』를 편찬하는 일에 열심이었지요. 드디어 1145년에 『삼국사기』 50권을 완성했어요.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쓴 이유는 당시 상황과 관련 있어요. 당시 고려는 묘청의 난을 진압하고 다소 어수선한 상황이었지요. 이전 역사를 정리하며 자신들의 역사를 확인하고, 유교를 정치 이념으로 확립하여 고려 왕조의 안정을 꾀하려고 했던 거예요.
『삼국사기』는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랜 된 역사책으로 그 가치가 높아요. 이전에 쓰인 역사책들과 중국의 여러 책들을 참고해 쓴 책이에요. 삼국 시대의 역사를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고요. 신라, 고구려, 백제, 삼국의 역사를 기록한 책으로, 신라의 정통성을 고려가 이었다고 생각했어요. 충, 효를 중요시한 유교적인 생각도 짙어요.
무엇보다 『삼국사기』는 신비로운 측면을 강조하기 보다는 객관적인 내용을 합리적으로 서술하려고 했지요. 이러한 역사 서술은 당시로서는 새로운 역사 서술 방식이었어요.
중국 역사책 서술 방식인 기전체를 따라 썼는데, 황제들의 역사를 다루는 ‘본기’에 삼국 왕들이 한 일을 기록했지요. 중국 문화가 넘쳐나는 속에서도 독자적인 자아의식을 표현하려고 한 것도 의의가 있고요. 하지만 가야와 발해의 역사를 다루지 않고 삼국의 역사만 다룬 점 등 아쉬운 점도 있어요.
『삼국사기』가 완성 된 후 130여 년 뒤 승려 일연이 『삼국유사』를 썼어요. 이 책에는 승려 이야기, 탑이나 절에 얽힌 이야기 등 불교 이야기가 많아요. ‘단군 이야기’ 등 전설이나 신화, 풍속, 노래 등 일반 백성들이 살았던 모습을 알 수 있는 이야기들도 담겨 있고요. 그래서 『삼국사기』와 함께 우리 역사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지요.
김부식과 일연의 차이
김부식은 송나라 사신 서긍으로부터 "널리 배워 아는 것이 많고, 기억력이 뛰어나 글을 잘 짓고 예와 지금의 일을 잘 알아 학사들이 믿고 따르기를 능히 그보다 앞 설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사람이에요. 유교를 중요시하고 중국을 지나치게 받들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현실적인 생각을 지닌 유학자로 우리 문화를 발전시킨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