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감찬

귀주에서 큰 승리를 거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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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하던 거란군은 귀주에 도착하였어요. 귀주성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한 면만 평지와 연결되어 있어 방어하기가 쉬운 군사적 요충지였어요. 그런데 강감찬은 성 안으로 들어가 수비하지 않고 들판에 군사를 배치했어요. 강감찬은 귀주 동쪽으로 퇴각하는 길목을 막고 소배압의 거란군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고자 했던 거지요. 또 앞서 개경으로 보낸 군대로 거란군의 뒤를 쫓게 해 협공을 준비하였어요.


두 나라 군사들은 모두 물러설 기세를 보이지 않고 치열한 싸움을 벌였어요. 그러나 승패가 쉽사리 결정되지는 않았어요. 그러던 차에 고려의 지원군 1만 명이 추가로 도착했어요. 전세는 고려에 결정적으로 유리해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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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주 대첩

전쟁기념관




때마침 갑자기 북쪽의 거란군 쪽을 향해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어요. 거세 바람을 타고 고려군의 화살들이 거란군 진영으로 비처럼 쏟아졌어요. 반대로 거란군의 화살은 멀리 날아가지 못했지요. 하늘마저 고려를 돕는 절호의 기회였어요. 강감찬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총공격 명령을 내렸어요.


사기가 오른 고려군은 매섭게 공격하였고, 거란군은 크게 패하여 달아나기에 바빴어요. 고려군은 여세를 몰아 달아나는 거란군을 악착같이 쫓아가 공격하였어요. 패한 거란군의 시체가 들판을 덮었으며 사로잡힌 병사와 획득한 말과 낙타·갑옷·무기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어요.


또한 10만 명의 거란 군사 중 살아서 돌아간 자가 겨우 수천 명에 불과했어요. 거란의 참혹한 패배였어요. 이렇게 강감찬이 거란군을 맞아 귀주에 크게 승리하였다고 하여 이 전투를 ‘귀주 대첩’이라고 불러요.


한편 패전 소식을 들은 거란 황제는 크게 분노하며


“네가 적을 얕잡아보고 적국 깊이 들어가 이 지경이 되었으니 무슨 면목으로 나를 보려는가? 내가 너의 낯가죽을 벗긴 뒤에 죽일 것이다.”


라고 하며 소배압을 꾸짖고, 멀리 유배를 보냈어요.

고려의 국왕은 강감찬의 군대를 직접 맞이하며 위로했어요. 이후 거란은 더 이상 고려를 침입할 엄두를 내지 못했어요. 이로서 거란과의 전쟁은 강감찬의 활약 덕에 고려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지요.


귀주 대첩으로 거란은 그동안 끈질기게 요구했던 친조를 더 이상 강요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압록강 연안의 성을 둘러싼 두 나라의 갈등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어요. 다만 이 전쟁의 결과 고려의 국제적 위상은 높아졌고, 고려와 거란 사이에 평화가 정착되는 실마리가 마련되었어요.


우리 민족은 외적이 침입했을 때 주로 산성에 의지해 지키면서 지쳐있는 적을 공격하는 작전을 많이 펼쳤어요. 그런데 강감찬은 귀주에서 뜻밖의 작전을 구사했어요. 기병을 동원하여 넓은 벌판에서 거란 기병과 맞서 싸웠지요. 강감찬은 왜 이전과는 다른 작전을 펼친 것일까요? 넓은 벌판에서 수많은 군사들이 말을 몰아 외적을 물리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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