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릉

조선 왕들의 마지막 궁궐, 조선 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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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은 죽은 왕이 머무는 마지막 궁궐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조선 시대에는 손꼽히는 좋은 자리, 즉 명당에 최고의 건축가들과 많은 백성들을 동원해 왕릉을 만들었어요. 조선 시대에는 왜 이처럼 왕릉을 만드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까요?


왕이 죽으면 왕위 계승자가 곧바로 왕위를 물려받아요. 새 왕으로서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첫 시험대가 바로 돌아가신 전 왕의 무덤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전 왕의 무덤, 즉 왕릉을 만드는 데 최대한 노력을 기울였지요.


왕릉을 만드는 일은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는 대형 공사였어요. 태조 이성계의 무덤인 건원릉은 4개월 동안 6천여 명이 왕릉을 만드는 일에 매달렸다고 해요. 왕릉을 만드는 일에는 경기도, 충청도, 황해도 등 전국 각지에서 온 군인, 농민, 상인, 승려, 노비 등 다양한 사람들이 동원되었어요. 이들은 이름난 건축가들의 지시에 따라 각자 주어진 일을 했어요. 왕릉을 만드는 데는 비용도 많이 들었어요.

세종의 시신을 담은 관을 원래 있던 헌릉 서쪽에서 경기도 여주에 있는 무덤(영릉)으로 옮길 때 상여꾼 1,500여 명이 동원되었다고 해요. 이들은 3교대로 서울에서 여주까지 상여를 메고 가야 했어요. 또한 석공을 비롯한 건축가 150명, 부역에 동원된 사람들이 5,000명이었어요. 이런 것을 보면 왕릉을 만드는 일은 정말 어마어마한 사업이라고 할 수 있겠죠?


조선의 왕들은 조상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 정기적으로 왕릉에 가서 제사를 지냈어요. 그래서 조선 왕릉은 왕이 머물고 있는 한양 도성과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어요. 경복궁과 창덕궁에서 100리(약 40km) 안에 위치해 있어 왕이 하루 사이 다녀올 수 있도록 했지요. 이처럼 조선 왕릉은 왕이 제사지내러 오기 적당한 곳에 만들어졌어요.


제사는 준비 - 제례(제사 의식) - 마침으로 이어지는데, 왕릉도 이 순서에 맞춰 세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어요. 제사를 지낼 때 제물(제사에 쓰이는 동물이나 음식물)을 마련하는 공간, 제물을 바치고 신(죽은 왕)을 만나는 공간, 그리고 왕릉의 주인인 죽은 왕이 머무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세 공간을 나누는 기준은 각각 홍살문과 정자각이에요. 홍살문의 바깥쪽은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이 있고, 홍살문 안쪽에는 정자각이 있어요. 정자각에서 예법에 따라 제사를 올리지요. 정자각 너머 높은 언덕 위에는 죽은 왕의 무덤인 능침이 있어요.

조선 왕릉은 5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조선의 유교 사상과 당시의 최고 건축 기술이 담겨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에요. 그래서 200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지요.


그런데 이 거대한 사업은 이름 없는 백성들의 고단한 손놀림과 땀이 없었다면 결코 완성될 수 없었을 거예요. 따라서 우리는 조선의 왕뿐만 아니라 백성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가지면 좋겠어요. 이제부터 조선 왕릉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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